본 론-사제직의 전승(사도 시대 후-정주주교(定住主敎)의 출현)

 

4. 2. 2. 정주주교(定住主敎)의 출현


앞에서 “장로, 감독의 신분이나 직무는 오늘날의 신부 또는 주교의 신분이나 직무와 동격이 아니고,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장로와 감독의 직명이 혼용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장로 또는 감독이라고 불리는 이 교직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늘의 신부 또는 주교의 직책으로 구별되고 고정되었는가 하는 점이다.1)


사도들의 전교 활동으로 중요 도시에 교회 단체가 형성되고, 또 전교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사도들은 전교 여행 때에 마르코(사도 13, 5), 실라(사도 15, 40), 디모테오, 디도 등의 제자들을 동반하였고, 그들을 각 지방 교회에 파견하였다. 이 제자들은 사도들과 함께, 또는 사도들을 대신하여 각 지방 교회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장로들을 선정하여 이들의 보좌를 받아서 교회를 다스렸다(1디모 5, 22; 디도 1, 5).


사도들의 가까운 협력자였던 디모테오, 디도, 루가, 그리고 사도라고까지 불리운 바르나바와 실라(1데살 2, 6) 등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의 봉사자요, 복음의 관리자요, 성령의 심부름꾼(사도 6, 42; 에페 3, 7; 고린 3, 7)이라고 성서는 증언한다. 성서의 이런 표현들은 이 협력자들이 사도들의 직무와 권한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사도들의 전교 초기에는 이런 협력자들을 자기들의 후계자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으나, 박해가 심해지고 사도들의 순교와 자연사(自然死)가 가까워지면서 그들에게 유언 비슷한 말로 자신을 대신하여 전교 사업을 계속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바오로의 사목 서간들에는 이 유언의 성격이 분명히 나타난다.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2디모 4, 6)고 말하면서, 디모테오에게 굳은 신앙을 가지고 순경이나 역경을 가릴 것 없이 끝까지 항구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책망하고 격려하며(2디모 4, 1-8), 많은 증인들이 있는데서 사도가 가르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하라(2디모 2, 1-2)고 당부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히 자신의 사도적 활동이 미구에 끝날 것을 전제하고 자기 사업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되기를 원하고 있고 또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이나 그들의 직접 협력자 및 수행자들은 전교 여행을 계속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아니하는 곳에는 장로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에게 그 곳 교회를 통치하는 감독직을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생존시에는 이들이 장로단의 대표격이기는 했지만 사도의 권한을 위임받은 주교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다른 장로나 감독을 선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1세기 말경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1세기 말엽의 저술인 요한 묵시록에는 정주주교(定住主敎)의 개념이 분명해진다. 요한은,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간에서, 그 지방 교회 전체를 수신인으로 하지 않고 각 교회의 책임자를 수신인으로하여 그들을 사자(使者)로 부르고 있다. 이들은 당시 그 지방 교회를 지도하던 감독들인데, 요한은 각 지방 교회의 잘못에 대해 그 감독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감독들에게 칭찬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것은 신비 현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지만, 요한의 이런 사상은 현실적으로 1세기 말경의 교회의 현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초대 교부들의 일치된 증언은, 사도 요한이 70년 경에 에페소에 정주(定住)하였음을 전하고 있고, 그가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어 묵시록을 저술할 무렵에는, 실제로 소아시아 여러 지방에 정주주교 제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약 성서를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이 사방으로 전교하여 흩어진 직후부터 주의 형제라 불리는 야고보를 으뜸으로 하는 체제가 서 있었고, 그 외에 주요 포교 중심지에는 사도들이 자주 또는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이런 체제가 일찍부터 발달했었다. 최고 책임자가 정주하지 않는 다른 교회에서는 장로들의 집단 지도 체제가 계속된 것 같다.


이것을 오늘날의 주교직과 비교해 보면 그 역할 상 예루살렘의 야고보나 디모테오 같은 이들의 직책이 오늘날의 주교의 직책이고, 또 그 관할 형태로 본다면 장로단의 대표격인 감독의 직위가 오늘날의 주교의 직위와 비슷하다.


사도 시대 교부들이 문헌에 의하면 ― 특히 이냐시오에 의하면 ― 각 교회에는 한 사람의 주교가 있어 성체를 축성하고, 성체를 분배하며, 교리를 가르치고 이단을 반박한다. 주교는 성례(聖禮)와 교도(敎導)와 통치(統治)에 있어 완전한 권한의 소유자이다. 그가 장로라고 부르는 신부들은 개인적인 직책이라기 보다는 장로단(Presbyterium)으로서 주교를 보좌했고 주교의 지명으로 성찬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부제는 단순한 분배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교회가 주로 도시에서 발전하는 동안에는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신부단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지만, 차차 시골에까지 전파되자 주교는 신부에게 자기 직무의 일부를 위임하여 파견시켰다. 주교는 신부에게 교리를 가르치게 하고, 세례를 주게 하고, 자기는 그 후에 지방을 순시하면서 견진을 거행하였으며 본시 주교가 주례하는 미사도 지방에서는 신부가 주관하게 되었다.2) 그리고 지방에도 신부 한 사람만 가 있는 법에 없고 반드시 하급 성직자들을 대동하고 있었기에 마치 도시 교회를 축소한 형태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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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론-사제직의 전승(사도 시대 후-정주주교(定住主敎)의 출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 2. 2. 정주주교(定住主敎)의 출현

    앞에서 “장로, 감독의 신분이나 직무는 오늘날의 신부 또는 주교의 신분이나 직무와 동격이 아니고,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장로와 감독의 직명이 혼용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장로 또는 감독이라고 불리는 이 교직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늘의 신부 또는 주교의 직책으로 구별되고 고정되었는가 하는 점이다.1)

    사도들의 전교 활동으로 중요 도시에 교회 단체가 형성되고, 또 전교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사도들은 전교 여행 때에 마르코(사도 13, 5), 실라(사도 15, 40), 디모테오, 디도 등의 제자들을 동반하였고, 그들을 각 지방 교회에 파견하였다. 이 제자들은 사도들과 함께, 또는 사도들을 대신하여 각 지방 교회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장로들을 선정하여 이들의 보좌를 받아서 교회를 다스렸다(1디모 5, 22; 디도 1, 5).

    사도들의 가까운 협력자였던 디모테오, 디도, 루가, 그리고 사도라고까지 불리운 바르나바와 실라(1데살 2, 6) 등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의 봉사자요, 복음의 관리자요, 성령의 심부름꾼(사도 6, 42; 에페 3, 7; 고린 3, 7)이라고 성서는 증언한다. 성서의 이런 표현들은 이 협력자들이 사도들의 직무와 권한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사도들의 전교 초기에는 이런 협력자들을 자기들의 후계자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으나, 박해가 심해지고 사도들의 순교와 자연사(自然死)가 가까워지면서 그들에게 유언 비슷한 말로 자신을 대신하여 전교 사업을 계속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바오로의 사목 서간들에는 이 유언의 성격이 분명히 나타난다.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2디모 4, 6)고 말하면서, 디모테오에게 굳은 신앙을 가지고 순경이나 역경을 가릴 것 없이 끝까지 항구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책망하고 격려하며(2디모 4, 1-8), 많은 증인들이 있는데서 사도가 가르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하라(2디모 2, 1-2)고 당부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히 자신의 사도적 활동이 미구에 끝날 것을 전제하고 자기 사업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되기를 원하고 있고 또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이나 그들의 직접 협력자 및 수행자들은 전교 여행을 계속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아니하는 곳에는 장로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에게 그 곳 교회를 통치하는 감독직을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생존시에는 이들이 장로단의 대표격이기는 했지만 사도의 권한을 위임받은 주교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다른 장로나 감독을 선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1세기 말경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1세기 말엽의 저술인 요한 묵시록에는 정주주교(定住主敎)의 개념이 분명해진다. 요한은,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간에서, 그 지방 교회 전체를 수신인으로 하지 않고 각 교회의 책임자를 수신인으로하여 그들을 사자(使者)로 부르고 있다. 이들은 당시 그 지방 교회를 지도하던 감독들인데, 요한은 각 지방 교회의 잘못에 대해 그 감독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감독들에게 칭찬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것은 신비 현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지만, 요한의 이런 사상은 현실적으로 1세기 말경의 교회의 현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초대 교부들의 일치된 증언은, 사도 요한이 70년 경에 에페소에 정주(定住)하였음을 전하고 있고, 그가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어 묵시록을 저술할 무렵에는, 실제로 소아시아 여러 지방에 정주주교 제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약 성서를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이 사방으로 전교하여 흩어진 직후부터 주의 형제라 불리는 야고보를 으뜸으로 하는 체제가 서 있었고, 그 외에 주요 포교 중심지에는 사도들이 자주 또는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이런 체제가 일찍부터 발달했었다. 최고 책임자가 정주하지 않는 다른 교회에서는 장로들의 집단 지도 체제가 계속된 것 같다.

    이것을 오늘날의 주교직과 비교해 보면 그 역할 상 예루살렘의 야고보나 디모테오 같은 이들의 직책이 오늘날의 주교의 직책이고, 또 그 관할 형태로 본다면 장로단의 대표격인 감독의 직위가 오늘날의 주교의 직위와 비슷하다.

    사도 시대 교부들이 문헌에 의하면 ― 특히 이냐시오에 의하면 ― 각 교회에는 한 사람의 주교가 있어 성체를 축성하고, 성체를 분배하며, 교리를 가르치고 이단을 반박한다. 주교는 성례(聖禮)와 교도(敎導)와 통치(統治)에 있어 완전한 권한의 소유자이다. 그가 장로라고 부르는 신부들은 개인적인 직책이라기 보다는 장로단(Presbyterium)으로서 주교를 보좌했고 주교의 지명으로 성찬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부제는 단순한 분배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교회가 주로 도시에서 발전하는 동안에는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신부단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지만, 차차 시골에까지 전파되자 주교는 신부에게 자기 직무의 일부를 위임하여 파견시켰다. 주교는 신부에게 교리를 가르치게 하고, 세례를 주게 하고, 자기는 그 후에 지방을 순시하면서 견진을 거행하였으며 본시 주교가 주례하는 미사도 지방에서는 신부가 주관하게 되었다.2) 그리고 지방에도 신부 한 사람만 가 있는 법에 없고 반드시 하급 성직자들을 대동하고 있었기에 마치 도시 교회를 축소한 형태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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