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중세의 직무사제직과 평신도의 위상
콘스탄티누스 전환기과 종교개혁 사이에 수많은 요소들이 교회에서 직무사제직의 형성과 이해에 작용했다. 직무사제직의 강조점이 하나의 단일한 기능, 곧 성찬의 제물을 봉헌하는 기능에로 옮겨졌고, 다른 기능들은 뒤로 물러났다. 또한, 직무 사제에게 독신제도같은 수도 생활 양식을 도입함은 사제직무의 카리스마적인 특징을 강화했다. 그러나 일단 영적 인간(homo spiritualis) 안에서 도출된 직무사제 개념은 평신도보다 도덕적으로 높이 평가되었으므로, 정말로 그것이 대조로서 단순히 보여지지 않았을 때, 직무 사제직은 그 기원의 평신도와의 단체성을 상실할 위험에 노출되었다.1)
아울러, 사회적 요소들은 시민법에 의해 부여된 특권들로써 성직자라는 특수 계층의 부상에 기여했다. 지역 본당들이 생겨났고 정치 권력이 사목 조직에 개입했다. 영주들은 그 권위를 영구적으로 사용하면서 보호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교회를 통치자의 개인적인 부산물로 고려했다.
이런 사회적 요소들은 황제와 교황 사이의 주교 서임권 논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11세기 그레고리오 7세(1073-1085)때 교황권이 회복되면서 평신도는 교회내정에 간섭할 수 없게 되었고 교회구성원도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으로 엄격히 구분되었다. 이런 구분으로써 점차 성직자만이 교회와 교회인을 뜻하게 되었고, 평신도는 법적인 의미만 갖게 되었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