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신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R.Wultmann의 그리스도론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의 실례로 제시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가 주장하는 것은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기점을 두고 거기서 사도적 선포가 태어났고, 이 사도적 선포에 의해서 교회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Bultmann의 그리스도론을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의 대표적 인물은 Pannenwerg이다. 예수의 신적 초월성, 신적 부자관계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역사의 예수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색깔을 취할 수 있다. 여기서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론을 하는데 기초로서, 축으로서 사용되는 인식의 종류이다. 즉 어디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가 이다. 예를 들면 신앙의 확인과 메시지가 일반적으로 모든 역사적 증거로 축소될 수 없고 이런 역사적 증거를 초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신앙은 모든 역사적 가치를 초월하고 있다) 신앙의 확인 혹은 신앙의 메시지 위에 그리스도론을 정립해야 하는가 아니면 역사의 예수에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성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신앙을 그리스도론의 기초로 취할 때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에서부터 모든 것을 고려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적어도 예수 안에 드러난 신성을 출발점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초를 택한다면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인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분리시키기보다는 보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갖춘 한 분이고 신앙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리듬 안에 근거하고있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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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신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R.Wultmann의 그리스도론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의 실례로 제시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가 주장하는 것은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기점을 두고 거기서 사도적 선포가 태어났고, 이 사도적 선포에 의해서 교회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Bultmann의 그리스도론을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의 대표적 인물은 Pannenwerg이다. 예수의 신적 초월성, 신적 부자관계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역사의 예수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색깔을 취할 수 있다. 여기서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론을 하는데 기초로서, 축으로서 사용되는 인식의 종류이다. 즉 어디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가 이다. 예를 들면 신앙의 확인과 메시지가 일반적으로 모든 역사적 증거로 축소될 수 없고 이런 역사적 증거를 초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신앙은 모든 역사적 가치를 초월하고 있다) 신앙의 확인 혹은 신앙의 메시지 위에 그리스도론을 정립해야 하는가 아니면 역사의 예수에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성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신앙을 그리스도론의 기초로 취할 때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에서부터 모든 것을 고려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적어도 예수 안에 드러난 신성을 출발점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초를 택한다면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인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분리시키기보다는 보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갖춘 한 분이고 신앙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리듬 안에 근거하고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