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역사적 기원(마태 1-2장, 루가 1-2장을 중심으로)

마태오, 루가는 예수 생애의 시작에 있었던 사건들 안에서 구약의 기다림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전체 복음의 예시로써 나타낸다.

1) 구약의 성취
(1) 예수의 기원(족보) ; 마태 1-2 장
나자렛 예수의 기원은 마태오, 루가 안에서 옛 이스라엘 역사를 상기시켜 준다. 아직 구약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약속이 예수안에서 이루어짐을 이야기한다. 특히 마태 1,1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예수 탄생의 경위를 마태 1,18-25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한다. 복음 사가는 예수의 족보를 세상의 기원, 인간의 기원에 연결시키면서 이야기한다. 아담이 인간의 족보를 열어주는 것 처럼, 예수에서 새 족보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는 세번에 걸친 14대로 언급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수의 탄생이 시간의 충만함에 이르러 역사의 마지막에 이루어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루가 3,38은 예수의 족보를 제시하지만 아담에까지 소급된다. 마태오는 아담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고유한 방법으로 예수가 새 아담임을 말하고 예수 안에서 구약의 역사가 성취됨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역사는 그분에서 완성됨을 의미한다. 마태 1,18에 “예수의 탄생은 이러했다” 라고 얘기하며 그 이후 시대는 예수의 보편적 역사의 전망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잉태가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성령에 대한 언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성령은 창세기에 나타나는 성령, 생명을 주는 힘, 인간에게 생명을 준 성령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잉태는 새 아담이 시작됨, 새 하느님 백성의 시작을 의미한다. 예수의 기원을 인류 역사의 시작에 위치시킨 것은 성령에 의해 새 역사, 새 인류의 미래가 열림을 강조한다. 마태오는 마리아에 작용한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창조의 힘과 생명의 기원을 갖고 있는 수태된 아기의 신적 힘을 보고 있다. 성령에 의해 잉태된 분의 신적 현실을 강조한다. 바로 마태 1,23의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

(2)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비교 ; 루가 1-2 장
루가 1-2장은 구약과 신약의 연결이 독특하게 나타난다. 1-2장의 중심은 예수와 세자 요한이다.
루가 1, 5-25 세자 요한의 출생 예고 → 1,26-38 예수의 출생 예고 → 1,39-56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 루가 1,57-87 세자 요한의 탄생 → 2, 1-21 예수의 탄생 → 2,25-40 성전 봉헌 → 2,41-52 성전에서 찾음

1) 이 이야기의 구조는 이스라엘의 기다림과 예수의 관계를 강조한다. 또 구약에 대한 극복과 성취를 다룬다. 실제로 여러 구약의 전례를 준수하는 구약의 분위기 안에서 전개된다. 여기서 구원의 보편성은, 루가 1-2장에서 확인되는 자비는 시편의 anawim을 상기시켜 준다. 루가 1,35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성신 강림과 교회 탄생의 서론을 동정녀와 관계지어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 탄생예고와 성신 강림을 제외하고는 성령이 구약의 분위기 안에서 내리고 있다 (예언자의 개입을 통해서). 여기서 성령이 작용하면서 즈가리야, 엘리사벳, 시므온이 입을 열게 된다. 그들에게 구원의 신적 계획의 아름다움, 경이로움(mirabilia Dei)을 노래하도록 하고 있다. 즉 미래를 선포하는 것이다.

2) 루가 1-2장은 구약 신약을 대조시키면서 준비, 성취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신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루가안의 두 출생을 비교함으로써 완성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하느님의 개입이 예수의 탄생에서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루가 1,32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은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세자 요한은 주님의 예언자로서 지적되고 있다 (루가 1,76). 예수의 도래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직접 빛을 선사하는 분으로 나타난다 (루가 1,78-79).
루가는 예수의 기원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해 세자 요한의 도래를 이야기하고 있고, 구약의 모든 기능은 요한 안에 집약되어 있다. 요한의 이야기에서는 성령이 선구자 안에서 작용하셨다. 요한은 새로운 엘리야로서 제시되고 있다. 엘리사벳에게 마리아의 신비를 계시해 준다. 이런 성령은 즈가리야에게 예수와 요한의 미래를 계시하고 시므온에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낸다.

3)예수 탄생의 예고. 여기서는 하느님의 창조적 개입이 드러난다. 성령이 임하다, 내려오다, 감싸다 등으로 성령을 말하고, 예수는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으로 나타난다. 성신 강림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도 1,8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가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안에 충만한 그 성령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런 구원론적 의미에서 루가 1-2장은 그리스도의 중심역할과 성령의 특별한 행위외에 마리아의 모습을 강조한다. 잉태하리라는 하느님의 개입외에 그녀가 자신을 통해서 옛 이스라엘이 종합되고 새 역사가 열리는 구원역사에서의 특별한 위치를 강조한다. 실제로 마리아는 구약의 예식을 준비한다 (루가 2,22). 그러나 구약과 신약이 만나는 곳에서 마리아의 역할이 드러난다. 구약에서의 모든 희망이 마리아 안에서 종합되어 있다. 교의 헌장 55항 “그 여인은 신뢰로써 주님께로부터 구원을 기다리고 받는 주님의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분이다.” 주님의 탄생에서 자신안에 주님을 모신이로, 자신안에 하느님의 사랑의 충만함을 받아들인 이로 나타난다. 이는 시원의 역할을 인격화하고 있다. 바로 이 마리아 안에서 당신 백성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인 구약의 위대한 희망이 실현될 것을 얘기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이다. 예수 탄생 예고는 출애 4,35, 루가 1,35에 기초한다. 출애급기에서는 야훼의 영광의 표징으로써, 성령이 함께 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이 현존하는 것으로 구약의 장막으로 드러난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은 마리아의 모성적 사랑안에서 성취된다. 마리아는 새 이스라엘을 출산하는 여인이다. 때문에 탄생예고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전 인류의 어머니임을 이야기한다. 단순한 선택 뿐 아니라 마리아의 능동적 역할(대답)도 함께 제시된다. 탄생 예고는 이를 강조한다. 일시적 사실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위로 나타나며 하와의 볼순종에 반대된다. 따라서 옛 이스라엘의 불충실도 마리아의 대답으로써 충실하게 드러난다. 마리라는 이런 대답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투신한 여인으로 드러난다.
육화의 여러 사건들은 그 의미를 묵상하고 숙고하도록 해준다. 이 신비는 반복될 수 없는 것으로 영원히 숙고되어야 한다. 루가 1-2장은 예수의 기원을 얘기하면서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긴 선구자와 마리아와 이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가 1,26). 여기에서는 계속해서 증거자를 내세우고 역사적 진실성은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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