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이해지평 안에서의 은총과 자유-전통적 견해의 평가(은총에 관한 전통적 견해(상))

 

4.1.6 은총에 관한 전통적 견해의 평가


A. 은총이란 말은 그 본래의 의미대로라면  구원을 향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역으로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관계를 표현해준다.


이런 표현에서의 말은 성서와 루터에게서 발견되는 것처럼 어떤 직접적인 의지 안에서, 원의 안에서 이러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서 은총개념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한에서 이 말은 이러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은총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이로써 그 은총은 사물적이고, 사건과 관련되고 그리고 그 은총은 인격체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결국 그것이 사물과 사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니까 하느님자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자체만을 놓고 해석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즉,관계 안에서는 인격체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즉 이것이 비 인격적인 마력적인 힘의 전달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은총이란 말은 직접적인 의지 안에서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의미한 것이고, 또한 특별한 은총개념은 인간에게 있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늘 새롭게 탐구되고 연구되는 한에서 이 단어는 그 자체 안에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은총은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관계로 묘사될 수 있다. 이로써 모든 피조물에 앞서는 인간의 탁월성과 인간 소명의 탁월성이 이러한 은총개념 안에서 특징지어진다. (즉, 인간을 인격체로 보고, 은총이란 개념이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한다면 인간을 향하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의지는 다른 피조물에 비해서 탁월성내지 우월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스스로 창조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창조주로서의 하느님,그리고 목적으로서의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든지 그렇지 않든지, 어떤 경우에도 은총이란 말이 표현하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부가적으로, 첨가되어서, 덧붙여져서 선사되는 어떤 것이다.


은총이 인간의 본질로부터나 혹은 하느님의 본질로부터 단순히 일방적으로 연역될 수 없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성서적 증언은 여기에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계약, 하느님의 통치 , 하느님의 영, 하느님의 사람되심(肉化),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에 관해서 언급한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본질로 부터 유출되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가적으로 주신 것이다. 이러한 부가적인 것은 성서적 총체 개념인 구원이란 말로 바꿔쓸 수 있다. 결국 구원이란 성서적 근거를 두면 구원역사, 구원경륜인데 이러한 것이 은총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 안에(부가적인 것들 안에) 본성과 은총에 대한 구분의 항구한 내용이 있다. 인간이 영원으로부터 이러한 하느님과의 관계로 불리운 그리고 인간은 처음부터 이 은총 안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심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은총에 앞서서 주어졌다는 것, 인간임은 창조된 인간이 구원으로 정향되었다는 것이고, 이로써 창조와 계약의 구분은 하느님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해소되었다. 창조와 계약, 하느님 안에서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본성과 은총의 일치에 대한 인식이 이 둘의 스승적 배경이나 구분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의미에서 자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창조가 하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그 이유는  창조가 인간에게 요청되어진 것이 아니고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요, 덤으로 주어졌다는 것이요, 그리고 그리스도 사건 안에서 정점을 이루는 은총 역시 다시 한번 새롭게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의미에서 부가적인 것이다.




*** cf)역사에 대해서


Historie    연대기적, 시대적 사건의 나열


Geschichte  사건의 의미를 묻는다.


역사라는 것이 숙고된 철학은 역사철학이다. 역사철학의 대표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헤겔이다. 헤겔 역사는 테제 – 안티테제 – 신티테제- 해서 최종의 목적지는 절대정신으로 향한다. 절대정신을 크리스찬적인 용어로 한다면, 하느님 혹은 종말론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 그 시대적 나열로 된다면 위인이나 역사에 무엇을 남긴 사람들만이 나타나기에, 그 사이의 이름없이 살다간 사람들은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숙고되어 왔었다. 이전 신앙에서는 역사는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로서의, 덧없는 역사로 죽음 이후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지금의 역사는 지나가는 괄호쳐진 역사의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 신앙에서는 그것이 아니고 하나하나의 사건 안에 하느님이 役事하심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다. 하느님은 인간 각 개개인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하느님, 인간과 삶을 만들어 가는 하느님, 이러한 내용이 성서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성서 안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인간과 함께 하는 하느님, 인간 곁에서 쭈빗거리는 하느님, 사람을 찾으시는 하느님, 늘 우리와 동행 하실려고 하시는 하느님의 다가섬, 이렇듯이 역사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가 구원의 시작이고, 지금 하느님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이해가 괄호 쳐진 역사이해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의미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하느님이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느님, 시작에서 저 영원에로 까지의 역사 안에서 구원역사, 구원경륜, 이러한 역사이해를 뒷배경에 두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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