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이해지평 안에서의 은총과 자유-전통적 견해와 오늘날 우리의 체험

 

4.2 전통적 견해와 오늘날 우리의 체험


은총에 관한 전통적 견해를 우리들 체험의 상황(context)에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A.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은총이 구원을 향하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라고 정리된다면 우   리는 그 관계를 인격체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한다.


이에 비해 하느님께 대한 질문, 구원에 대한 질문을 동질화시킨다면 하느님과 구원의 연관성은 형상적(외적)으로 명료하다. 그러나 불분명한 것은 하느님과 구원이 내용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자명하게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이런 면에 있어서 전통적 견해는 분명했다.


“하느님은 실제로 계시고 — 인간은 죄를 지었고 –하느님은 우리와 새롭게 시작한다.”는 분명한 도식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느님 실재와 통치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은총은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구원적 관계였다. 이러한 견해 안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의 차이가 발견된다. 즉 오늘의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자명한 지식은 하느님께 대한 회의적인 질문으로 남아 있다. 이제 은총에 대한 이해의 시도나 선별된 해석은 결국 전통적 하느님 체험이나,  전통적 하느님에 대한 지식의 자명성을 전제하고 내포하는 맥락 안에서 하느님 은총의 본질을 오늘의 이해지평 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은총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을 찾으려는 것이고, 그 개념은 그 개념 자신이 지니는 고유한 내용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오늘날의 세상의 질문을 문제삼을 수 있고 주제화 시킬 수 있게 된다.




B. 전통적 견해가 은총은 근본적인 본질상 선사되는 것이고(구원론과 연결지어서 extra    nos,뜻밖), 동시에 인간의 존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주장하면 이 또한 다시    한번 형상적(외양적)으로는 선사된다는 것과, 필수적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전제된다면 또 다시 그    이해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렇게 필수적인 것으로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선물로서의 은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그런 언사들 안에 하느님의 실재가 주제로 다루어진다면 이해가 더 쉬워질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여기에 필수적이고 동시에 선사된 그것(은총)이 하느님의 실재와 하느님의 다가섬 자체에 대한 확신일 때(체험지평에서 감지될 수 있을 때), 필수적이고 없어서는 안될 선물로서의 은총이 오늘날 우리의 지평 안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C. 하느님의 은총이 어떤 확신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어떤 특정문   제를 야기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단지 전통적 견해에 있어서 이 믿음은 다시금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역사신학 이해에 있어서 하느님이 개입하여 인간과 함께 역사를 꾸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어떠한 경우도 증명될 수 없는 하느님의 실재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도 함께 다루어진다. 그러나 오늘날 하느님의 은총이 그리스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은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도달되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은총자체 인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 견해에서처럼 그리스도가 은총의 도구적 원인(Causa instrumentalis)이나, 아니면 모범적 원인(Causa exemplaris)을 뜻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에 가까이 다가온 유일한 한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궁극적이고 결정적 증인이며 중재자이고 그 근거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 견해와 오늘의 이해 사이의 간극(gap)을 근거로 오늘의 우리의 과제를 짧게 요약한다면,  하느님 은총의 본질을 오늘의 이해지평 속에서 오늘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규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오늘날의 질문이라는 context로 부터 유래하고, 여기서 유래한 개념이나 그 해석을 통해 하느님 은총의 필수적 성격과 선물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개념과 그 해석을 찾아야 한다. 즉 이는 신앙의 주제로써 이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쇄신하고 체험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하느님 은총의 작용이 바로 이런 개념과 해석을 통해 오늘날에 설명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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