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교정책과 전개과정 및 최근의 북한 교회 실상-종교활동 탄압시기(1948~53)

 

    2. 종교활동 탄압시기 (1948년~1953년)




이 시기는 북한 정권이 「조선기독교연맹」을 통한 국가 지배의 형태를 거부한 천주교에 대해 본격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홍용호 주교의 납치(1949년 5월 14일)를 전후하여 성직자와 수도자 체포, 교회 시설 및 재산 몰수가 전면적으로 이루어 진다. 북한의 이같은 본격적인 종교 탄압은 1948년 12월의 소련군 철수와 함께 1950년 6∙25를 전후한 전시 체제로의 돌입에 따라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특히 6∙25의 비극은 북한 교회를 「목자잃은 침묵의 교회」로 전락시키는 커다란 상처를 남겨놓게 된다.1)


북한은 6∙25남침 이후 남한 각처에서 천주교 성직자에 대한 학살과 체포를 자행했다. 그들은 1950년 7월에 북한에서 교황사절 방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성직자들까지 납북하여 갔는데, 그 숫자는 42명이었고 그들 중 살아서 송환된 사람은 단지 8명에 불과했다. 한편 덕원수도원을 필두로 원산 등지에서 붙잡힌 외국인 신부, 수사, 수녀들도 4년간의 강제 수용생활 등으로 그간 25명이 희생되어 총 67명 중 42명의 생존자만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렇게 해서 해방 후 6∙25를 전후한 전쟁기간 중 체포 혹은 학살된 내외국인 신부, 수녀, 신학생 등의 숫자는 남북한을 통해 모두 150명에 달했는데 그 가운데 96명은 북한교구 소속이었다.2)


해방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현황은 신자수가 약 19만명이었고 그 중에서 북한 지역의 신자수는 최소한 5만명 정도였다. 교구로서는 전국의 8개교구중 북한에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교구 이렇게 3개 교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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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종교정책과 전개과정 및 최근의 북한 교회 실상-종교활동 탄압시기(1948~53)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종교활동 탄압시기 (1948년~1953년)


    이 시기는 북한 정권이 「조선기독교연맹」을 통한 국가 지배의 형태를 거부한 천주교에 대해 본격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홍용호 주교의 납치(1949년 5월 14일)를 전후하여 성직자와 수도자 체포, 교회 시설 및 재산 몰수가 전면적으로 이루어 진다. 북한의 이같은 본격적인 종교 탄압은 1948년 12월의 소련군 철수와 함께 1950년 6∙25를 전후한 전시 체제로의 돌입에 따라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특히 6∙25의 비극은 북한 교회를 「목자잃은 침묵의 교회」로 전락시키는 커다란 상처를 남겨놓게 된다.1)

    북한은 6∙25남침 이후 남한 각처에서 천주교 성직자에 대한 학살과 체포를 자행했다. 그들은 1950년 7월에 북한에서 교황사절 방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성직자들까지 납북하여 갔는데, 그 숫자는 42명이었고 그들 중 살아서 송환된 사람은 단지 8명에 불과했다. 한편 덕원수도원을 필두로 원산 등지에서 붙잡힌 외국인 신부, 수사, 수녀들도 4년간의 강제 수용생활 등으로 그간 25명이 희생되어 총 67명 중 42명의 생존자만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렇게 해서 해방 후 6∙25를 전후한 전쟁기간 중 체포 혹은 학살된 내외국인 신부, 수녀, 신학생 등의 숫자는 남북한을 통해 모두 150명에 달했는데 그 가운데 96명은 북한교구 소속이었다.2)

    해방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현황은 신자수가 약 19만명이었고 그 중에서 북한 지역의 신자수는 최소한 5만명 정도였다. 교구로서는 전국의 8개교구중 북한에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교구 이렇게 3개 교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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