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선교학(Missiology)-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의 발전

 

2. 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의 발전1)




19C는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시작되고, 가톨릭에서도 선교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어 선교에 대한 깊은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독일의 개신교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개혁자들은 외국 선교에 대해 무관심했고 심지어는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19C까지 아무런 선교사업을 펼치지 않았다(1880년 이후 독일은 식민지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부족했던 선교에 대한 정당화를 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선교활동에 대한 신학적이며 성서적인 이론을 전개하기 위하여 성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개신교 선교학의 아버지는 구스타프 바르넼(Gustav Warneck, 1834-1910)이다. 그의 노력으로 선교학 잡지(Allgemeine Missionsl-Zeit-schrift, 1873)가 창간되고, 최초로 선교학 교수로 강의를 시작했으며(1896), ‘복음 선교학’(Evangelische Missionslehre, 1903)을 저술했다.


개신교에서 연구 발전된 선교학은 가톨릭을 자극했고 조셉 슈미들린(Joseph Schmidlin, 1876-1944)과 로베르트 슈트라이트(Robert Streit, OMI)가 그 선두에 나섰다. 슈미들린은 ‘선교학을 위한 정기 간행물’(Zeitschrift für Missionswissenschaft, 1911)을 창간했고, 1950년부터는 ‘선교학과 종교학을 위한 정기 간행물’을 출간하고 있다. 그는 선교학 강좌와 ‘선교학 국제연구소’(Internationales Institut für Missionswissenschaft, 1911)가 Münster에 개설되었을 때 첫 번째 교수와 소장이 되었다. 그 연구소를 통해서 그는 첫 번째 선교학 교과서 ‘가톨릭 선교학 입문’(Katholische Missionslehre im Grundriss, 1923)과 첫 학술적 역사인 ‘가톨릭 선교사’(Katholische Missiongeschichte, 1925)를 발행했다.2) 슈미들린은 선교학의 교의적인 부분을 선교활동을 위한 교의신학적인 해답이나 선교사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했으나, 후대의 학자들은 선교학의 신학(선교신학)은 그 자체로 고유한 목적과 대상을 가진다고 비판하였다. 슈트라이트는 ‘선교 문헌학’(Wissenschaftliche Missionsbibliographie, 1902)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선교 학자들을 돕기 위해 기념비적인 ‘선교 도서목록’(Bibliotheca Missionum, 1916)이라는 정기간행물은 통하여 출판하였다.


인제 선교학은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를 잡고, 선교학 전문 잡지들이나 입문서를 발간하게 되었으며, 학술회의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선교에 관한 제반 문제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나오게 된다3) 유럽의 대학에서는 선교학과 연구소가 정식으로 설립되고 선교역사, 선교도해(지리학과 통계), 인종학, 선교의 권리, 선교신학 등을 담고 있으나, 선교에 관한 진정한 신학적 고찰이 부족했다. 인제 선교학 연구소들은 전문가들을 양성하고(선교26) 서로 돕고 협력함으로써(선교35), 전교회의 과제인 선교는 전반적인 신학의 과제가 되게 해야 한다. 신학은 선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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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선교학(Missiology)-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의 발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의 발전1)


    19C는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시작되고, 가톨릭에서도 선교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어 선교에 대한 깊은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독일의 개신교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개혁자들은 외국 선교에 대해 무관심했고 심지어는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19C까지 아무런 선교사업을 펼치지 않았다(1880년 이후 독일은 식민지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부족했던 선교에 대한 정당화를 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선교활동에 대한 신학적이며 성서적인 이론을 전개하기 위하여 성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개신교 선교학의 아버지는 구스타프 바르넼(Gustav Warneck, 1834-1910)이다. 그의 노력으로 선교학 잡지(Allgemeine Missionsl-Zeit-schrift, 1873)가 창간되고, 최초로 선교학 교수로 강의를 시작했으며(1896), ‘복음 선교학’(Evangelische Missionslehre, 1903)을 저술했다.

    개신교에서 연구 발전된 선교학은 가톨릭을 자극했고 조셉 슈미들린(Joseph Schmidlin, 1876-1944)과 로베르트 슈트라이트(Robert Streit, OMI)가 그 선두에 나섰다. 슈미들린은 ‘선교학을 위한 정기 간행물’(Zeitschrift für Missionswissenschaft, 1911)을 창간했고, 1950년부터는 ‘선교학과 종교학을 위한 정기 간행물’을 출간하고 있다. 그는 선교학 강좌와 ‘선교학 국제연구소’(Internationales Institut für Missionswissenschaft, 1911)가 Münster에 개설되었을 때 첫 번째 교수와 소장이 되었다. 그 연구소를 통해서 그는 첫 번째 선교학 교과서 ‘가톨릭 선교학 입문’(Katholische Missionslehre im Grundriss, 1923)과 첫 학술적 역사인 ‘가톨릭 선교사’(Katholische Missiongeschichte, 1925)를 발행했다.2) 슈미들린은 선교학의 교의적인 부분을 선교활동을 위한 교의신학적인 해답이나 선교사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했으나, 후대의 학자들은 선교학의 신학(선교신학)은 그 자체로 고유한 목적과 대상을 가진다고 비판하였다. 슈트라이트는 ‘선교 문헌학’(Wissenschaftliche Missionsbibliographie, 1902)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선교 학자들을 돕기 위해 기념비적인 ‘선교 도서목록’(Bibliotheca Missionum, 1916)이라는 정기간행물은 통하여 출판하였다.

    인제 선교학은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를 잡고, 선교학 전문 잡지들이나 입문서를 발간하게 되었으며, 학술회의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선교에 관한 제반 문제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나오게 된다3) 유럽의 대학에서는 선교학과 연구소가 정식으로 설립되고 선교역사, 선교도해(지리학과 통계), 인종학, 선교의 권리, 선교신학 등을 담고 있으나, 선교에 관한 진정한 신학적 고찰이 부족했다. 인제 선교학 연구소들은 전문가들을 양성하고(선교26) 서로 돕고 협력함으로써(선교35), 전교회의 과제인 선교는 전반적인 신학의 과제가 되게 해야 한다. 신학은 선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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