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교할 것인가?-한국 교회의 선교사명

 

3. 한국 교회의 선교사명




제삼천년기를 겨냥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2천년대를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의식화”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새로운 의식화”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과 표현, 목표를 설정하여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우리 신자들의 선교에 대한 의식이 대체적으로 낮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낮은 것은 신자들의 소극적인 성향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가 직, 간접으로 선교에 대한 의식을 명확하게 심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 모든 단체와 행사를 반드시 선교와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심지어 유치원 조차 선교원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을 정도다. 특히 작은 행사를 치르더라도 선교잔치, 선교체육대회, 선교음악회 등으로 선교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성이 있다. 그만큼 개신교는 선교에 대한 열의를 모든 면에서 다져가고 있으며 그 신자들에게 선교의식을 강하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효과적이고 구체적 선교를 위해서 범교회적인 선교에 대한 의식화가 필요하다.




그간 1970년대 이래 높은 경제 성장력을 이룩한 사회 안에서 한국교회는 이례적으로 경이적인 외적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3백 50여 만명의 신자들을 포용하면서 아시아 교회 안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주도적이고 안정적인 여건을 확보한 교회로 세계 교회의 눈길을 모아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점점 낮아지면서 냉담자와 행방불명자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70~80년대 주된 입교자 계층들인 지성인과 젊은 학생, 그리고 근로자 계층이 교회에 대해 가장 냉담한 층으로 급변한 사실은 앞으로 한국교회 진로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획기적 전환기의 시대 징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그간의 외적성장에 자족하고 안주하는 자세를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자세를 가지고는 질적으로 새로운 2천년대 도전을 견딘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운 실정이다.




2천년 대희년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 IMF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우리 교회는 지금이야말로 선교에 더 많은 열정과 연구를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이미 초기교회때부터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의 열정을 보이고 그 열정을 꽃피웠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선교는 과거의 그같은 경험을 되살려 현재의 어려움과 다변화되고 있는 새 시대의 흐름을 선교적 활성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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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선교할 것인가?-한국 교회의 선교사명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 한국 교회의 선교사명


    제삼천년기를 겨냥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2천년대를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의식화”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새로운 의식화”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과 표현, 목표를 설정하여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우리 신자들의 선교에 대한 의식이 대체적으로 낮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낮은 것은 신자들의 소극적인 성향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가 직, 간접으로 선교에 대한 의식을 명확하게 심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 모든 단체와 행사를 반드시 선교와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심지어 유치원 조차 선교원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을 정도다. 특히 작은 행사를 치르더라도 선교잔치, 선교체육대회, 선교음악회 등으로 선교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성이 있다. 그만큼 개신교는 선교에 대한 열의를 모든 면에서 다져가고 있으며 그 신자들에게 선교의식을 강하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효과적이고 구체적 선교를 위해서 범교회적인 선교에 대한 의식화가 필요하다.


    그간 1970년대 이래 높은 경제 성장력을 이룩한 사회 안에서 한국교회는 이례적으로 경이적인 외적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3백 50여 만명의 신자들을 포용하면서 아시아 교회 안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주도적이고 안정적인 여건을 확보한 교회로 세계 교회의 눈길을 모아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점점 낮아지면서 냉담자와 행방불명자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70~80년대 주된 입교자 계층들인 지성인과 젊은 학생, 그리고 근로자 계층이 교회에 대해 가장 냉담한 층으로 급변한 사실은 앞으로 한국교회 진로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획기적 전환기의 시대 징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그간의 외적성장에 자족하고 안주하는 자세를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자세를 가지고는 질적으로 새로운 2천년대 도전을 견딘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운 실정이다.


    2천년 대희년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 IMF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우리 교회는 지금이야말로 선교에 더 많은 열정과 연구를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이미 초기교회때부터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의 열정을 보이고 그 열정을 꽃피웠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선교는 과거의 그같은 경험을 되살려 현재의 어려움과 다변화되고 있는 새 시대의 흐름을 선교적 활성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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