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6,1-6: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회개

 

호세아서 6장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회개

1. 말씀읽기: 호세아 6,1-6: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회개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잘못을 했을 경우, 그 순간만을 모면하기 위해서 용서를 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오래 기억하면서 보답하면서 살아갈까요?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제 참회할 때입니다. 주님께 돌아가는 것,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벌을 받은 이유는 우상숭배로부터, 하느님께로부터 떠난 마음을 붙잡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헛것에 물든 마음을 치유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벌하시다가도 마음이 아프셔서 다시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주시고,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안아 주시는 분입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단기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감당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살려 주신다는 것은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 아니라 치명적인 병으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악습에 물들고, 우상에 물들고, 하느님이 아닌 다른 나라 왕에게 의지하려 했던 그들의 병든 마음을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테르뚤리아노는 이 구절을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에 대한 예언으로 봅니다(1코린15,4).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함없고, 믿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에서는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겨울 동안 얼어서 모든 생명체들이 죽어 있는 듯 보이지만, 봄비를 통해서 새 생명이 다시 살아나듯이 그렇게 죽어 있는 내가 회개하고자 하면,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면 다시 받아 주시고, 다시 사랑해 주십니다.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그런데 회개하려는 노력은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입으로만 회개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캐오가 예수님께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고, 횡령한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회심은 변함이 없어야 하고, 지속되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순간의 감정이 회심은 아닙니다. 회심은 이어져야 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게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죽음의 심판이 예언자들을 통해 선고되고, 하느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찍어 넘어뜨린다는 것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도끼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필요 없는 나무에, 죽은 나무에 닿은 것입니다. 이제 그 나무들은 불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시고, 이것이 바로 호세아 예언서의 주요 메시지입니다(2,21-22 참조).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하느님께서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나의 행동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느님께 효성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지키고, 당신을 알고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1. 하느님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회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bibleold, 호세아서,요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