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뒤, 자유주의 신학 및 세속화한 생활에 대항하여 일어난 미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보수주의 운동을 말한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발행된 12권의 작은 총서 ≪The Fundamentals : A Testimony to the Truth≫의 64명의 집필가 중에는 미국의 전천년왕국운동(前千年王國運動, American premillennial movement)과 영국의 케스윅 콘벤션(Keswick Convention)에 소속된 사람이 많이 참가하였으며, 1919년에 ‘천년왕국론자’들은 포괄적인 조직인 ‘세계기독교 근본주의연맹’(World’s Christian Fundamentals Association)을 형성하여 보수주의 깃발을 내걸고, 근본주의운동의 강령조항을 굳혔다. 사회적인 복음(福音)을 주장하여 사회 전체를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적합시키도록 하자는 진보파와 이에 맞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를 고수하는 보수파와의 대립이 차차 심해져 후자를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s)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사회적인 복음을 마왕(魔王)으로 보았으며, 다윈의 진화론이나 역사적인 고등비평, 기타 프로테스탄트 교회 전반에 스며든 자유주의 사상, 즉 근대주의(近代主義, modernism)에 대항하여 성서는 그 원본에 있어서 오류가 전혀 없이 보존되었다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設)과 삼위일체설과 인간의 완전타락과 구원을 위한 ‘재생’의 필요성 등에 입각하여 교회안의 이단적인 분자를 적발, 많은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을 만들기도 하였다. 반(反)근대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근본주의는 가톨릭교회의 태도와 일백 상통하는 바가 있으며, 근본주의자 그들이 바랐던 것처럼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더라도, 자유주의의 지나친 신학적 경향을 시정해 주고, 교회의 좋은 모습 옛 ‘경건’을 지키며, 교회에 참된 평화와 자유의 길을 닦는 데 이바지한 것만은 사실이다.
[참고문헌] S.G. Cole, The history of Fundamentalism, New York 1931 / R.T. Handy, Fundamentalism and Modernism in Perspective, Religion in Life 24, 19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