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도회 [한] 騎士修道會 [라] Ordo militaris [영] military Order

일반적인 중세의 기사단이나 수도 단체와는 달리 이교도로부터 그리스도교 왕국을 수호할 군사적 임무와 수도자로서의 의무를 함께 서약한 중세의 특수한 수도 단체이다. 전투에 대한 게르만적 전통을 고수해 온 중세의 기사들은 그들의 무력을 선용하도록 촉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십자군전쟁을 일으키자 곧 기사 수도회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십자군에 의해 탈환된 성지를 수호하고 스페인에서는 이슬람 교도들을 몰아냈으며 동유럽에서는 이단자들을 개종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보기 드물게 근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 요한 기사수도회(Orders of the Hospital of St. John of Jerusalem)는 성지에서 병자와 순례자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기사 수도회는 1119년 위그 드 페이앙(Hugh de Payens)에 의해 창설되어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성전 기사수도회(Order of the Temple)와 역시 성지에 세워진 독일 기사수도회(Teutonic Knight)인데 후자는 뒤에 프로시아를 정복하고 개종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이론적인 면에서는 드 페이앙의 요청에 따라 를 쓴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가 기사 수도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세워진 기사 수도회들도 역시 성 베르나르도와 요한 기사수도회 및 성전 기사수도회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1158년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칼라트라바(Calatrava) 기사수도회를 비롯한 레용(Leon) 의 알칸타라(Alcantara) 기사수도회, 포르투갈의 오비츠(Oviz) 수도회, 아라곤(Aragon)의 몬테사(Mantesa) 수도회 등을 비롯한 대부분이 시토(Citeaux) 수도회와 제휴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 수도회의 융성도 예루살렘 성지의 함락과 이베리아반도의 통일과 더불어 그 빛을 잃게 되었으며 중세 말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왕들이 기존의 기사 수도회를 차츰 귀족의 명예단체로 변환시키자 근대 이전에 대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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