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한] 金起浩

김기호(1824~1903). 전교회장. 명도회장. 세례명 요한. 황해도 수안군 남면 무송동에서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태어났다. 15세 때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과거에의 뜻을 버리고 글방을 세워 학동을 가르치며 경향(京鄕) 각지의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25세 경 중병을 잃고 난 뒤부터 사상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하여 인생(人生) 본질과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끝에 1854년 이마두(李瑪竇)와 홍봉주(洪鳳周)에게 ≪성세추요≫(盛世芻堯)와 성서(聖書)를 빌어 읽고 이 해 8월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 후 10여년 동안 베르뇌 주교를 보좌하며 전국으로 전교여행을 다녔고, 1866년 병인(丙寅) 박해가 일어나자 가족을 경기도 청계산의 하우현(下牛峴)으로 피신시킨 후 자신은 강원도 금강산, 양양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876년 블랑(Blanc, 李福明) 주교,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 등을 맞아들였고 1881년부터 평안도에서 전교하였다. 1883년 일본 나가사끼(長崎)에서 거행된 블랑 주교의 성성식에 참석한 후 귀국길에 중국 상해(上海), 남경(南京), 차쿠(岔溝) 등지의 천주교회를 시찰했고, 귀국해서는 명동성당 건립 준비에 관계하는 한편 1886년 성서활판소가 설치되자 차남 상구(相九)를 일본에 보낸 인쇄기술을 배워오게 하였다. 1891년 일선 전교활동에서 은퇴하고 하우현에 거주하면서 하우현 성당을 건축하고 본당을 창설한 후 1903년 12월 28일 사망하여 청계산에 안장되었다.

김기호가 남긴 저술로는 1903년 명동성당 준공의 기쁨을 노래한 <성당가>(聖堂歌) 등 천주가사와 ≪구령 요의≫(救靈要義), ≪소원신종≫(溯源愼終), 그리고 40여년간의 전교활동을 회고한 ≪봉교자술≫(奉敎自述) 등이 있다.

[참고문헌] 金起浩 原著, 趙聖熙 譯, 奉敎自述, 교회와 역사(78호~100호), 1982. 1~1983. 10 / 金雲會, 金起浩 硏究, 韓國敎會史論文集, I, 韓國敎會史硏究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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