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동(?~1802).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순교자. 충청도 청양(靑陽) 고산(高山) 출신. 1801년 박해를 피해 충청도 배론[舟論] 산중으로 들어가 옹기장사를 하며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때 황사영(黃嗣永)이 서울 사는 이상주(李喪主)라고 신분을 속이고 이곳을 찾아왔을 때, 김한빈(金漢彬)과 힘을 합쳐 굴을 파서 그를 숨게 하였다. 황사영은 이 굴에서 중국 북경주교에게 보내는 편지, 이른바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를 썼으며, 11월 2일 김귀동과 함께 포졸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김귀동은 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과 배교하기를 강요당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홍주감영(洪州監營)으로 이송되어 1840년 2월 2일(음) 끝내 참수(斬首)되었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中, 분도出版社, 1980 / 邪學懲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