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현 [한] 金泌現

김필현(1910~?).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 루도비코. 1910년 3월 평남 평양시 관후리(舘後里)에서 부(父) 김성호(金聲鎬)와 모(母) 기씨(奇氏) 사이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관후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 乙組)에 진학, 소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당시 평양교구장 모리스(Morris, 睦) 주교의 추천으로 박용옥(朴瓏玉)과 함께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 유학, 1939년 3월 18일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박용옥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동년 10월 24일 귀국, 평양 대신리(大新里)본당 보좌신부로 첫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41년 12월 일제(日帝)에 의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남과 동시에 평양교구 소속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체포될 때 함께 체포되어 3개월간의 옥고(獄苦)를 치르고 풀려나 3년 동안 대신리 본당의 주임신부로 사목하다가, 1944년 4월 평양교구 부주교 겸 관후리 주교좌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다. 광복 후 일제에 의해 징발되었던 관후리성당을 되찾게 되자 성당신축을 책임맡고 공사를 총지휘하였고, 1948년 북한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더욱 더 가중되어 원산교구장 사우어(Sauer, 辛) 주교, 평양교구장 홍용호(洪龍浩) 주교가 체포되어 행방불명된 상태에서, 1949년 6월 10일 교구 경리부장 겸 주교비서 최항준(崔恒俊) 신부, 대성당 기성회 이사(理事) 강유선(姜有善)과 함께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순교(殉敎)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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