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인사
1. 말씀읽기: 갈라티아1,1-5 인사
1 사람들에게서도 또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파견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서 파견된 사도인 나 바오로가,
2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가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 인사합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 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5 하느님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2. 말씀연구
1-5절까지는 바오로사도의 편지 양식에서 서두인사 부분에 해당됩니다. 발신인(바오로사도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 수신인(갈라티아의 여러 교회), 문안인사(은총과 평화에 대한기원)의 세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각 요소에 신학적 의미를 지닌 여러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1 사람들에게서도 또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파견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서 파견된 사도인 나 바오로가,
신약시대의 편지 서두 양식이 그렇듯이 바오로 사도도 이 편지 첫 머리에서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두의 인사를 전합니다. 발신인은 물론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을 가리켜, 교회 같은 인간 공동체에서 위임받은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의 중개로 받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란 아마도 바오로사도를 예루살렘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에 소개한 바르나바(사도9,27;11,25-26)를 지칭하는 듯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교 사명은 직접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오로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사도직을 위임받았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하느님의 행위로 돌림으로써 그 사도직의 궁극적인 원천이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느님께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아포스톨로스)는 칠십인역이나 성경 밖의 그리스어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용어로서, 당시 유다인 관습의 영향을 받아 “어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모든 권력을 위임받아 보내진 대리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다른 편지들의 서두인사에서 바오로는 흔히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표현합니다(1코린1,1;2코린1,1;에페1,1;콜로새1,1;1티모 1,1;2티모1,1;티토1,1). 그렇지만 갈라티아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라는 속격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서 파견된 사도”라는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사도직이 인간에게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신적 기원을 지닌 것임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의 일차적 목적은 자신의 복음이 참되다는 것이지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이미 갈라티아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사도적 권위가 문제시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가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 인사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발신인에 자기와 함께 있던 모든 형제들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형제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집필 장소에 우연히 바오로와 함께 있던 같은 선교사들이나 바오로가 묵고 있는 그곳 교회 공동체 구성원 일부나 전원을 안중에 둘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오로가 이들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이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내용 곧 참된 복음은 자기만이 선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모든 형제들도 여기에 완전히 동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발신인에 바오로 외에 다른 사람들을 포함시킨 예는 그의 다른 편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1코린 1, 1: 소스테네; 2고린 1, 1: 티모테오; 필립 1, 1: 티모테오; 1데살 1, 1: 실바노와 티모테오; 2데살 1, 1: 실바노와 티모테오; 필레 1: 티모테오).
수신인은 물론 갈라티아의 교회입니다. 단순히 하나의 교회가 아니고 여러 교회들이라서 복수형을 사용했습니다. 바오로가 세운 갈라티아 교회는 서로 간에 가까운 거리에서 왕래할 수 있는 여러 교회 공동체로 구성되어 바오로가 보낸 편지를 서로 번갈아 가며 읽을 수 있었던 그런 교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일종의 회람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앞으로 서신을 보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오로의 다른 편지들에 비해서 여기서만은 갈라티아의 교우들에게 어떠한 호칭이나 애칭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달랐습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1데살 1, 1), [참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거룩한 이들(필립 1, 1), 거룩한 믿는 이들(에페 1,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하고 믿는 이들(골로 1, 1)].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랑 받고, 부르심을 받아 거룩하게 된 이들(1코린 1, 2), 또는 하느님께 사랑 받고,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마 1,7) 따위처럼 다소 장황하고 번잡하기까지 한 표현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바오로는 갈라티아 교우들에게 이 편지를 쓸 때 느끼고 있던 불편한 심기를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처음부터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책임 있는 사도로서, 교회 창설자로서, 목자로서 교우들에게 당연히 나눠주어야 할 축복을 유보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어 오는 축복과 축원의 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은총과 평화”는 바오로사도의 독특한 문안인사 양식으로서 메시아적 축복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은총과 평화는 하느님과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총(카리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행위 전체를 종합하여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1코린8,9). 평화(에이레네)는 “온전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에서 온 것으로서 물질적, 영적 번영과 안녕과 행복을 지칭했고, 예언자들은 메시아 시대의 행복을 서술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 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악한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상은 현세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써 사탄에 의해 지배되는데(2코린4,4 참조),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이 두 세상을 합치시켰으며(1코린10,11), “현세”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셨습니다.
5 하느님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5절은 짤막한 영광송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친서에서 곧 잘 이런 영광송을 첨가합니다(참조: 로마 1, 25; 11, 36; 16, 27; 2코린 1, 20; 필립 4, 20). 영광송의 기능은 이제 방금 서술적 찬양 방식으로 열거한 하느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경륜과 위업을 찬가(讚歌) 방식으로 마감하는데 있습니다. 같은 계통에 속하는 영광송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참조: 로마 11, 36a; 에페 3, 20f; 필립 4, 20등).
3. 나눔 및 묵상
1.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교회의 신자들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2. 사도(아포스톨로스)란 어떤 사람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