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광주 북동(北洞)본당 주임 모나간(Monaghan, 牟) 신부가 광주시 남동 55번지에 500여평 되는 구 한옥을 매입하여 개조 보수한 뒤 12월 8일 무염시태성모를 주보로 하여 남동본당이 창설되었다. 초대(1949~1961년) 주임신부인 박문규(朴文圭, 미카엘) 신부 재임 중 6.25동란이 일어나 성당이 괴뢰군에게 몰수당하고 박신부는 연금과 피난을 거듭하다 1951년 부활절에 도로 찾은 본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1952년에 들어와 부설 유치원(1학급)의 개원(開院)을 보았고, 1953년 11월 교우 증가로 본당 옆에다 L자형으로 건물을 증축하였으며, 1957년에는 부설 공동묘지 7,740평을 매입했고, 1958년 3월 화순(和順) 공소를 준공함과 함께 본당 승격을 기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기고 박신부는 1961년 1월 12일 선종하였다.
2대(1960~1965년) 김정용(金正容, 안토니오) 신부 때인 1964년 봄 성당확대를 결의하고 옛 성당 철거와 새 성당 건축공사를 시작했으나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12월 31일 성녀 오틸리아를 주보로 하여 축성을 보게 되었다. 그 동안 계림동(鷄林洞), 월산동(月山洞) 본당이 분리되었으며, 3대(1965~1969년)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신부 때에는 방림동(芳林洞), 호남동(湖南洞) 본당의 분리작업이 있었다. 4대(1969~1973년) 장옥석(張玉石, 루치오) 신부, 5대(1973~1977년) 박상수(朴常洙, 고스마) 신부를 거쳐 6대(1977~1983년) 김성용(金成鏞, 프란치스코) 신부 때에 와서 1980년 6월 광주사태 수습을 위해 활동중 계엄사에 연행, 구속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리하여 본당 신부 서리를 박상수 교구청 관리국장이 겸직하게 되었고, 1981년 2월에 본당 사목 활성화를 위해 장세현(張世現, 미가엘) 신부가 보좌신부로 발령 부임하였다. 김정용 신부의 본당 귀임은 1981년 8월 15일 형집행 정지로 석방됨으로써 이루어졌다.
광주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본당 설립 뒤 불과 3~4년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주교관의 건립은 물론, 대건대신학교(大建大神學校)를 비롯하여 한국 레지오 마리에 군단 본부가 되어 왔다. 더구나 이 남동본당이 설립됨으로써 대교구의 면목을 갖추게 되었는데, 7대(1983~현재)인 강영식(姜永植, 안드레아) 신부가 주임신부로 활약하면서 교우수는 날로 늘어나 1983년 12월말 현재 남자 819명, 여자 1,522명, 도합 2,341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