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ly, Pierre(1350~1420). 프랑스의 추기경, 신학자, 철학자, 콩피엔(Compiegne)에서 태어나 아비뇽(Avignon)에서 죽었다. 1380년 파리 대학 신학박사 및 교수가 되었고, 1384년 스페인 나바라 신학교 교장, 1389년 국왕 샤를르 6세의 고해신부 및 자선자금 관리인이 되었으며, 파리대학 총장이 되었다. 아비뇽의 교황 글레멘스 7세에 의해 랑(Laon)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샤를르 6세가 그를 놓아주지 않았으며, 1394년 성 루이가 건립한 생트샤펠의 보물관리자로 임명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1395년 그에게 르퓌(Le Puy) 주교구를, 그 이듬해에는 명예로운 캉브레(Cambrai) 주교구를 맡겨 자기 사람을 만들려고 하였다. 피사당(黨)이 승인한 교황 요한 23세는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함으로써 자기편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다이이는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년)에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였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선출된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그를 아비뇽 주재 교황특사로 임명하였다.
유명론자(唯名論者)인 그는 오캄(Occam)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강력히 실천에 옮겼다. 공의회운동에 있어서의 그의 태도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롬바르도(Petrus Lombardus)의 신학명제집에 관한 그의 논제집 ≪Quaestiones super libros sententiarum≫은 파리에서 많은 신봉자를 얻었다. 그는 공의회를 교황보다 우위에 놓으려는 공의회 수위설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일반적 공의회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품고 있었다. 그의 문필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174권의 저서를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