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동본당 [한] 沓洞本當

인천직할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답동본당은 1889년에 설립되어 1961년 7월 인천교구가 서울 대교구로부터 분리, 설정됨으로써 메리놀회 소속인 맥노튼(羅吉模) 주교가 인천 교구장으로 부임, 1962년 교계제도(敎階制度)의 설정과 함께 대목구에서 주교구로 승격되어 주교좌 본당이 되었다. 조선교구가 설정된 후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는 인천에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국인 59명, 일본인 25명의 신자를 확보하여 출범하였다. 1889년 답동본당이 설립되자 빌렘(J. Wilhelm) 신부가 부임하여 지금 본당 자리에 부지 3,212평을 마련하여 성당을 건립하기 위한 정초식을 가졌고, 1891년에는 2대 르비엘(Levile, 申) 신부가 부임하여 1893년에 임시 성당을 건립한 뒤, 3대 마라발(Maraval, 徐) 신부가 부임하여 건평 396평의 본격적인 고딕식 성당을 1899년에 완공하였다. 답동본당은 1955년 송림본당이 분리되어 가기 전까지 인천 시내의 유일한 본당이었으며 신자가 늘어감에 따라 1966년에는 도화동본당이, 그리고 또 해안본당 등이 분리 설립되었다.

답동본당의 현재 관할구역은 답동을 비롯하여 신포동, 사동, 신생동, 신흥동 1 · 2가, 경동, 내동, 용동, 유동, 율목동, 관동 3가, 송학동 3가, 인현동, 중앙동 4가 그리고 옹진군 영흥도와 선재도이고 공소는 2개소이다. 4대 주임 홍병철(洪秉喆, 루가) 신부는 1900년에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의 본당신부로 답동본당에 부임하였다. 그는 모든 일을 신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줄 아는 정신을 심어주기에 노력하였다. 전교에는 많은 힘을 기울여, 781명의 신자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5대는 드뇌(E. Deneux, 金學俊) 신부였다. 1904년 취임한 드뇌 신부는 인자하기로 유명했던 분이며 프랑스의 부유한 은행가의 둘째 아들이었다. 한국에 파견된 그는 고아들을 위해 해성보육원 건물을 확장하고, 바오로 수녀원 신축에 힘을 기울였다. 이미 그는 1900년에 인천 사립 박문소학교(博文小學校 – 현 가톨릭회관 자리)를 설립하여 신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에게 초급과정의 교육을 베풀도록 하였다. 1933년 드뇌 신부는 증가일로의 신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본당의 개축공사에 착수하였는데 이 공사는 19세기말에 건축된 구 성당을 그대로 세워둔 채 외곽을 벽돌로 쌓아올리는 어려운 공사였다. 그러나 착공 4년 2개월 만인 1937년 6월 30일에 연건평 307.2평의 위용을 갖춘 성당을 준공하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바오로 대성당이다. 그는 3층 현대식 병원도 세워 해성병원의 기초를 다졌다. 부임한 이래 본당 건립을 비롯하여 수녀원, 고아원, 병원, 학교 그리고 유치원 등을 세우는데 아낌없이 사재(私財)를 털어 답동본당의 확고한 기반을 만들고, 1947년 2월 9일 74세로 선종하였다.

6대 주임신부는 한국인 임종국(林鍾國, 바오로) 신부였다. 그동안 외국인 신부들만 모셨던 본당 신자들은 그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수녀원에서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한국인 신부가 왔기 때문에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본당 운영에 각별히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임신부는 제일 먼저 현재의 사목회와 같은 체제를 갖추어 평신도들로 하여금 참여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신자들은 스스로 본당운영에 적극 앞장서게 되었다. 1945년 임신부는 당시 부평에 있는 소화(昭和) 고등여학교를 인수받아 인천 박문중학교로 개편하고, 여자 중 · 고등학교도 병설하였다. 1947년에 임신부는 지금과 같은 사목회의 체제를 갖추기 위해 몇 사람의 평신도를 주축으로 신자 스스로가 본당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갔다. 그 후 7대는 강 요한(John Barke) 신부였고, 8대 설리반(H. Sullivan), 9대 강의선(姜義善, 힐라리오), 10대 박성규(朴成奎, 분도), 11대 김 필립보, 12대 김 힐라리오, 현 주임은 송주석(宋周錫, 안셀모) 신부가 맡고 있으며 1983년말 현재의 신자수는 6,35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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