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현 소재지는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507로서 본당 주보는 ‘모든 성인’이다. 1970년대에 당시 대전 교구 소속인 합덕본당(合德本堂)은 당진군 내의 10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당진면 구룡리가 신자 수 170여 명으로 가장 큰 공소였다. 1939년 5월 교구 사제피정이 끝난 후 당진은 합덕본당 관할에서 분리되었고, 당시 금사리에서 전교하던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로망투(Emile Fromentoux, 包萬壽) 신부가 초대(1939~1940년) 본당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당진본당이 설립되었다.
프로망투 신부는 곧 당진면 읍내리에 있는 그 전 당진 보통학교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였다.
당진본당의 역대 주임신부와 신자수, 관할 공소수는 다음과 같다.
2대(1941~1946년) 박원영(朴垣英, 프란치스코), 3대(1947~1948년) 이복영(李福永, 요셉), 4대(1948~1950년)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코르데스(Marius Cordesse, 孔) 신부로서 6.25동란으로 1950년 8월 22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9월 23~26일 사이에 살해되었다. 다음 5대(1952~1965년) 본당주임은 유인성(劉寅成, 프란치스코) 신부로서 14년 동안 사목하였는데, 공소 수는 15개였고, 1958년 6월 23일 대전교구의 설정으로 본당소속이 서울교구에서 대전교구로 바뀔 당시 신자 수는 2,451명이었다. 6대(1966~1967년)는 변갑선(卞甲善, 치릴로) 신부로서 당시 관할구역 내 주민인구가 8만 명인데 대해 신자수는 2,500명, 공소수는 19개로 성가수녀회가 진출하여 전교활동을 담당하였고, 부속 유치원 · 중학교 · 진료소 · 고아원 · 신용조합을 운영하는 등 크게 발전된 상태였다. 7대(1967~1968년)는 김순호(金順浩, 프란치스코) 신부로서, 신자 수 2,674명, 공소 수는 19개이며, 8대(1968~1971년)는 구자오(具滋五, 베네딕토) 신부로서 공소수는 그대로이나 신자수는 2,261명으로서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9대(1972~1976년) 조병기(趙炳起, 바오로) 신부 때인 1973년에는 신자수 1,938명, 공소수 17개, 1975년에는 2,120명, 17개였고, 10대(1977~1980년) 김병재(金丙宰, 바오로) 신부 때인 1977년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대신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가 전교활동을 담당했는데, 신자수는 2,275명이고 공소수는 15개로 줄었다. 그 뒤 1년만인 1978년에는 신자수 2,349명, 공소수 16개로 늘었고. 1979년에는 2,354명, 16개, 1980년에는 2,405명, 16개였다. 현재 본당주임은 11대(1981~현재) 장영식(張英植, 토마스) 신부인데 1981년 신자수 2,467명, 공소수 21개, 1982년 2,486명, 20개, 1983년 2,632명, 21개로서 신자 수는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984년 현재 신자수는 2,680명, 관할 공소수는 21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