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본당 [한] 大田本堂

이 본당은 일제 하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 대전지역 최초의 본당으로 신설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당시의 관할구역은 대전을 비롯하여 충남의 대덕군(大德郡), 연기군(燕岐郡), 충북의 청주(淸州), 영동군(永同郡), 보은군(報恩郡), 옥천군(沃川郡) 일원이었다. 초대 본당신부는 한국인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 2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루블레(Rouvelet, 黃惠中) 신부였다. 이후 현재의 21대 권용희(權龍喜, 도미니코) 신부에 이르기까지 5명의 한국인 본당신부를 제외한 16명의 역대 본당신부가 외국인이었다.

1921년 초대 이종순 신부는 이미 매입해 둔 목동(牧洞) 소재 1만여 평 대지 위에 성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926년 루블레 주임신부는 현 대흥동(大興洞) 성당을 준공 낙성하고 그 곳으로 이전했으며, 목동의 구 성당은 철폐하였다. 1941년 소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본당 주임신부 코르미어(Pierre Cormier, 高) 신부를 비롯한 3명의 신부가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1945년 8.15광복 때 석방됨). 1945년 10월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는 목동의 성당을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당으로 전용(專用)케 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대흥동의 본당이 전소되고, 1952년 그 자리에 임시성당이 신축되었다. 대전 본당은 6.25 이후 8년간 대흥동본당에 합병되어 있다가 1958년 5월 본당이 재부활 되면서 목동의 구성당으로 이사하였고, 본당 명칭이 목동본당으로 정착되었다. 한편 1948년 대흥동본당에는 서울에서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상주하면서 주교관 살림과 희망의원(현 성모병원)의 일을 돌보기 시작했고, 1956년에는 대덕군 산내면(大德郡 山內面)에 교회묘지를 조성, 1957년에는 소화(小花)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71년 현재의 목동 본당이 신축 축성되었고, 한편 대흥동 본당은 대전교구 주교좌 성당으로서 1962년 대규모의 성당건물(523평)이 신축되었다. 목동 본당의 주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현재 본당 주임은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권용희 신부, 신자수는 1,647명(1983년 현재)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