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칭 OP. 성 도미니코에 의해 1216년에 설립된 청빈(淸貧)과 교육을 근본으로 하는 설교수도회. 이 수도회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신앙의 진리를 만인에게 전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육체노동 대신으로 지적(知的) 활동에 종사한다. 이 회는 하느님의 섭리에 전목적으로 의존하는 사도들의 생활을 그대로 본뜬 철저한 청빈생활을 하며 수도자처럼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속 가운데 함께 사는 생활을 한다.
도미니코회는 설교자들이 신앙을 철저히 알고, 그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복음의 세계적인 전파를 목표로, 신학의 학문적 중요성을 살리기 위해 파리대학을 비롯하여 옥스퍼드 등 명문대학에서 다방면에 걸친 깊은 연구를 통하여 학문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 회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는데 성 알베르트 마뉴스(St. Albertus Magnus)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해설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들인 것도 큰 공적이었다. 아퀴나스는 1243년에 도미니코회에 들어가 스콜라주의를 완성하였다
역사의 교황들은 도미니코 수도회를 여러 가지 임무에 활용하였다. 그 중에는 중세 십자군 원정대에 대한 격려설교와 한 때는 교회내의 저서 검열까지도 맡긴 일이 있었다. 이단심문(異端審問) 재판소의 재판관은 주로 도미니코회의 수사들이 맡았으므로, 그들을 ‘정통신앙의 파수꾼’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다. 1984년 현재 5,616명의 회원들이 있다.
△ 제2회 : 도미니코 성인의 정신을 따라 제2회의 수녀가 되면 우선 성식서원(盛式誓願)을 하고, 교황이 정한 금역제(禁域制)를 준수하며, 도미니코수도회와 같이 성무일도를 실천한다.
일부 수녀원은 교육에 종사한다. 1206년 프랑스 남부의 프루이유(Prouille)에 있는 노트르담(Notre-Dame) 수도원에서 도미니코 형제들의 사도활동을 영신적으로 돕기 위하여 창설된 이 수녀회는 처음에는 소녀들의 교육사업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1219년에 성 도미니코에게 위임하여 로마의 성 시스트(St. Sisto) 수녀원을 개혁하였다. 이 수녀원에서 지키는 회칙(Regula St. Sixti de Urbe)은 그 뒤에 설립된 수녀원에서 많이 따르고 있다. 총회장 훈베르토에 의해 개정되고, 1259년에 공포된 지금의 회칙은 1929년 11월 15일 교황의 공인을 받은 것이다. 성무일도, 공동생활, 단식, 의복 등에 관한 회칙은 남자수도회와 같다. 이 수도회에는 관상수녀 외에 노무(勞務)수녀와 밖으로 나다니는 외부수녀가 있다.
△ 제3회 : 도미니코회에는 사도직을 수행하는 제3회가 또 있다. 남자 제3회는 1852년에 창설되어 1868년에 회칙의 공인을 받았다. 프랑스, 스위스, 중국에 수도원의 설치를 보았으나 1923에 도미니코회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여자 제3회는 단독의 수도회를 가지고, 1683년에 마체라타(Macerata)의 성체(聖體) 수녀회가 설립된 후, 1880년에 영원한 로사리오 여자 도미니코회가 산투란(P. Saintouerens)에 설립된 뒤 1884년 공인을 받았다. 1914년에는 성 마리아 여자 도미니코회(프랑스계)가 로마에 설립되어 순관상적(純觀想的)인 수도생활을 한다. 활동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원도 저녁에 대성무일도(大聖務日禱)를 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대개는 성모 마리아의 소(小)성무일도를 한다. 수도회의 옷은 메리놀의 도미니코 제3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흰색을 착용한다. 약 3000곳의 여자 제3회 수도원에는 4만명이 훨씬 넘는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