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ffaello, Sanzio(1483~1520). 이탈리아의 화가 · 건축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사람. 라파엘로는 11세 때, 화가로 우르비노에서 활동을 하던 아버지, 산치오(G. Sanzio)를 잃고, 1499년 페루지아로 가서 페루지노의 문하생으로 그림을 배웠다. 거기서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스승의 구도(構圖)를 개조하였다. 공간에 교차하는 화음(和音)의 물결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음악적인 감각은 루브르 미술관의 <성 미카엘>, <성 게오르기우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예술적인 일관된 기조를 이루고 있다.
페루지아에 온 후로는 급속히 페루지노의 최고기법을 익혔으며, <성모대관(聖母戴冠)>(바티칸 미술관), <그리스도의 책형(磔刑)>(런던), <스포잘리치오>(성모의 결혼, 밀라노) 등을 페루지노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인데 공간의 처리나 환상적인 표현은 그의 스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미를 보여 준다. 그는 1504년 피렌체로 가서 4년간 체재하는 동안, 현실감에 넘친 예술 감각에 감동하여 그 곳의 예술적 전통에 도취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明暗法) 등을 배워 페루지노의 영향을 탈피하고 피렌체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도니 부처상(夫妻像)>등 초상화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뚜렷이 보이며, 이 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진 성모자상에 있어서도 성모의 자태나 피라밋형의 구도에 있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다분히 나타나 있고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 모방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선인(先人)의 기법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구성에 있어서의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의 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 등에는 언제나 독자적인 매력을 나타내었다. 1509년에는 교황 율리오 2세를 위하여 바티칸 궁전 장식에 종사하여 천장화(天障畵)를 그린 후, 사면의 벽면에 <성체의 논의>, <아테네의 학당>, <파르나소스> 등을 그렸다. 14년 동안 그는 건축에도 손을 대었는데 선배인 브라만테가 죽은 뒤 베드로 대성당 건축의 감독을 맡았다. 미켈란젤로가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작품으로 미의 표현에 있어 미를 이차적인 가치로 밖에 인정하지 않은 비극적인 인물이었다고 하면, 라파엘로는 고전예술의 미의 이상을 불변의 기준으로 보는 예술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