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교구 [한] 滿洲敎區

요동(遼東) 교구라고도 하였던 만주교구는 1838년 북경 교구로부터 분리되어 대목구(代牧區)가 되었다. 1898년 남만(南滿) 대목구가 되었고, 1946년 봉천(奉天)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만주교구의 설정은 한국 천주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 1827년 교황청 포교성은 조선 포교지의 선교를 파리 외방전교회가 맡아 달라고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인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당시 조선에는 박해가 빈번하여 선교사의 조선 입국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기 때문에 입국 전에 조선 교회의 밀사들과 만나서 입국절차나 시기 등에 관해서 자세히 협의해야 하였다. 또 약속 장소인 조선 국경으로 가려면 반드시 요동지방을 거쳐야만 했는데 요동지방에서 보호권을 주장하는 포르투갈 선교사의 방해에 부딪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선교사의 조선 입국을 용이하게 하려면 우선 이 지방을 북경 교구로부터 분리하여 대목구로 독립시킴으로써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간섭을 배제시켜야 한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사실을 교황청에 요청하였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요청을 접수한 교황청은 1838년 만주 대목구를 신설하고 만주와 요동지방을 관할하게 함과 동시에 만주 대목구를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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