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교회 유적지. 모래가 많아 모래실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신유박해(1801년)를 피해 경상도로 넘어온 서울과 충청도 교우들이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어 살던 교우촌이었다. 1814년 여름 대홍수로 흉년이 들어 살기가 어려웠는데, 산골에 위치한 교우마을은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아 생활이 윤택하였다. 이 때 경상도 일대를 구걸하면서 돌아다니던 배교자 전지수라는 사람이 모래산 교우촌에서 구걸하는 물자를 넉넉히 주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관가에 고발, 모래산 교우마을은 1815년 2월 22일(음) 부활절 날 관헌에 의해 습격당하였다. 많은 교우들이 안동감옥에서 순교했고, 더러는 대구감옥으로 넘어가 순교하기도 하였다. 순교자의 숫자는 정확치 않다. 안동감옥이 초만원을 이뤄 객사가 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는 기록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동에 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