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신론의 어의 : 우리말의 무신론이란 낱말은 서구어 즉 라틴어의 atheismus를 번역한 낱말이며 라틴어의 atheismus는 그리스어의 atheos로부터 유래한다.
2. 개념 및 구분 : 무신론은 유신론 즉 신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학설과 생활 태도를 총칭한다. 그러나 서구 사조에 있어서의 무신론은 특히 근세에 와서 명백해지고 체계화되었다. 이런 무신사상은 신성(神性) 혹은 신적(神的)인 것에 대한 거부이기보다는 위격적(位格的, personal)존재이며, 인간과 우주에서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 창조주이며 섭리의 존재인 신,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고 인간은 그에게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신을 거부하는 사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적 신에 대한 무신사상이다. 이런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적 신사상이 체계적이었기 때문에 체계적 무신론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기서 실천적 무신론도 생겨났다. 기실 무신론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다.
실천적 무신론은 신을 인정하지만 실천생활에는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생활태도를 말한다. 체계적 무신론에는 절대적 무신론과 상대적 무신론이 있다. 전자는 신의 존재도 신성(神性)의 존재도 인정치 않는다. 또한 그것은 더 세분되어 소극적 무신론과 적극적 무신론으로 구분된다. 소극적 무신론은 신과 신적인 것을 무지에 의해 조잡하게 거부하는 경우[루소(J.J. Rousseau)의 경우]와 무관심에 의해 신을 거부하는 상태[하이데거(M. Heidegger)나 크로체(B. Croce)의 경우]가 있다. 적극적인 무신론은 어떤 이유를 제시하여 신과 신적인 것을 거부하는 경우[에피쿠로스(Epikuros), 라 메트리(J. La Mettrie),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 마르크스(K.H. Marx), 니체(F. Nietzsche), 슈티르너(M. Stirner) 등의 경우]이다. 이 적극적 무신론에 전투적 무신론을 첨가할 수 있다. 이런 전투적 무신론은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을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하며 그 박멸을 주장하여 실천하기 때문에 전투적 무신론이라 한다. 상대적인 체계적 무신론은 신의 존재는 인정치 않으나 신성과 신적인 것은 인정한다. 이런 무신론에는 불가지론자(실증론자), 범신론자(스피노자), 이신론자(理神論者) 즉 자연신론자 등이 속한다. 그 밖에도 인간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을 창조해 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만자족적 무신론과 인간의 자유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신을 부정해야 한다는 요청적 무신론, 신의 문제는 제기할 필요조차 없다는 무관심적 무신론, 악(불행)의 존재 때문에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신론 등이 있다.
3. 역사적 내용적 고찰 : 무신론의 규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무신론의 범주도 달라진다.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관에 근거한다면 불교 · 유교 등을 비롯하여 자연주의, 범신론, 불가지론, 실증주의, 실용주의 사상 등등이 다 무신론의 범주에 들 것이다. 그러나 신관을 더 폭 넓게 본다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또 시대적 양상 여하에 따라 무신론의 양태가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 무신론의 모호성과 난점이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무신사상 몇을 간추려 소개한다. 그리스나 로마시기 그리고 중세에는 넓은 의미로 무신론적 색채를 띤 사상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체계적이며 명시적 무신론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근세에 이르러 무신론의 적극적 양태는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R. Descartes)의 사상에서 특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명석 판명한 이념을 추구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를 정립한다. 이렇게 그는 진리의 근거를 자명성과 사고하는 주체의 사유에서 인정하였다. 이런 내재(內在)에로의 사고 특히 cogito는 그 후 3세기라는 긴 도정을 거치며 합리론, 경험론, 관념론, 유물론, 현상론, 실존주의 등을 거치는 동안 가지가지의 무신사상온 산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학설은 그의 세계의 기계론적 인식 때문에 무신론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모든 자연적 현상은 물질과 운동과 그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처음으로 명시적 무신론을 주장한 사람은 퍼에르 베일이었다. 또 이런 사상적 흐름은 이신론(理神論)과 경험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경험론은 실체에 대해 불가지론 내지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며 물질계에 지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기에 이른다. 이런 사상의 흐름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와 영국의 자유사상가 존 톨난드같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물질적 질료에 생기를 인정하여 물질적 질료에 자체 충족성을 인정하게끔 시대 사조를 이끌어 갔다. 이런 사고는 계몽주의 시기의 무신론의 핵심이었다.
18세기의 무신론은 요청적 무신론의 형태를 띠며 이런 무신론은 돌박(P.H. D’Holbach)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그리고 아주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 돌박은 무신론자를 인류에게 해로운 환상과 망상적 존재를 파괴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돌박은 유물론적 체계를 형성하며 모든 것을 원자와 원자의 운동에 환원시켰다. 신사상은 무익하고 해로운 가설에 불과하다. 돌박은 무신론을 인간 행복의 기초로 생각한다. 라 메트리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인간의 영양생활, 감각생활, 더 나아가서는 심리생활 등 인간의 전 생활을 신경계통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 계몽주의는 초자연주의를 반대하는데, 즉 관찰할 수 있는 우주를 넘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주의는 자연의 자족성만을 인정하였다. 선험적 흑은 비판적 관념론의 창시자인 칸트도 계몽주의적으로 생각하여 신의 존재는 순수이성에 의해서는 증명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신은 실천적인 면 즉 윤리적인 면에서 요청되는 것이다. 무신론적 사상은 18세기에 와서 더욱 완전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흐름은 결국 근세사상을 인간중심주의에로 이끌어 갔다. 포르베륵은 종교를 갖는다는 것을 마치 정당한 윤리적 세계가 가능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야코비(C.G. Jacobi)는 무신론자라는 비난에서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무신론을 17세기의 합리론자인 스피노자(B. de Spinoza)에게서 영향을 받은 학설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는 피히테(J.G. Fichte)와 셸링(F.W.J. von Schelling)도 무신론자로 비난하였다. 그것은 셸링이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 신의 개념을 세계의 절대적 산출성과 신성한 근원적 힘으로서의 자연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피노자의 심대한 영향은 19세기의 대 관념론자인 헤겔(G.F.W. Hegel)에게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헤겔의 사상에는 벌써 무신론의 두 요소가 내재해 있었다. 첫째는 종교와 종교적 진리의 속성을 순수개념 즉 철학과 비교하여 보다 낮은 표상이나 과정에 귀속시킨 것이고 둘째는 자연과 역사의 양태에 신의 내재를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신은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의 나타남에 자기를 제시한다. 따라서 세계 없이 신은 신이 아닌 것이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좌파에 속하며 적극적 무신론의 창조자였다. 그는 모든 인식의 근원을 감각적 직접성에서 설명한다. 신의 인식은 인간이 자기 자실의 본질을 무한화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무한화하여 종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종교는 논리적이거나 존재론적 실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심리적 실재성을 가질 뿐이며 환상적인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 인간은 환상으로 신을 창조한 것이다. 포이에르바하의 신관은 “사람이 사람에게 신이다”로 표현된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사적 유물론적 무신론을 요약 제시코자 한다.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무신론은 정적(靜的)인 감각주의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종교와 신의 개념의 발생 설명은 아직 관념적이며 순전히 심리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순전히 물질적 구성체로서의 인간에 주목한다. 또 종교를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실재의 기초 위에서 고찰한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과 별로 다르지 않게 종교를 의식의 내면성에서 설명함으로써 종교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종교의 기원과 사고 일반의 기원을 사회적 관계 혹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압력에서 고찰한다. 즉 사고 일반은 역사적 산물이며 사고 형태의 다양화는 사적 특수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기실 종교는 인간의 생산 활동의 발전과정에 있어 보다 낮은 단계에 역사적으로 제약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종교는 원(原)사회의 형태를 지닌다. 그러나 종교도 착취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된다. 즉 종교는 사회적 착취의 다양한 형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패역할을 한다. 이 관점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가 종교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종교박멸의 핵심적 요인이다.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실현이며 인간 본질은 종교 안에서 어떠한 실재도 갖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종교적 소외는 사회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생각한다. 종교는 불행으로 눌린 피조물의 탄식이며 마음없는 세계의 심정이며 정신없는 시대의 정신인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탄압은 참된 행복의 요청이다.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 신학의 비판, 정치의 비판 등이 된다. 이런 비판의 결과를 인간해방이라고 한다. 결국 종교는 생산관계의 한 현상 즉 상충구조의 한 현상에 불과하다.
니체는 현실 세계를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와 같이 끊임없는 생성으로 생각하며 거기에는 어떠한 정지적 존재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생성은 자체의 더 큰 진화를 향해가는 삶이며 힘에의 의지로 생각된다. 이런 경향의 형이상학적 목적은 초인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다시 원상(火)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또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반복은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므로 그는 영겁회귀설을 성립시킨다. 사물은 영원성을 갖는다. 니체는 신의 부재를 이론적으로 논증코자 하지 않는다. 기실 신존재 신념은 가장 유해하며 인간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신의 비존재는 인간생명의 요청이다. 신신앙은 자연의 가치 부정을 말하며 또 이런 신앙은 생명의 적이다. 신사상은 인간의 절대적 독립성에 위배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르트르(J.P. Sartre)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제창한다. 사르트르 철학에 있어서 자유는 코기토(Cogito)의 존재를 선행하며 그 존재에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신론적이며 인간 존재는 신을 거부하는 본연의 자유에 성립된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신의 문제를 생자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자유롭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자기 존재의 무화로서 자기를 실현한다. 무화로서의 근본적 혹은 본래적 자유는 신을 배제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신은 자체의 기초가 되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기의 인간 존재는 자기 자신의 대자를 ‘즉자(卽自) – 대자(對自)’로 하려는 직접적 기도인 것이다. … 모든 인간 존재는 그가 존재에 근거를 갖기 위해 또 동시에 그 자신의 근거인 것으로 인해 우연성에서 탈출하는 즉자 즉 종교에서는 신이라고 부르는 자기원인자(ens causa sui)를 구성하기 위해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한 수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난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逆)이다. 그러나 신의 관념은 모순된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무익하게 잃어버린다. 인간은 무익한 한 수난이다.”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자기 무신론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짓는다. “실존주의란 일관된 무신론적 입장에서 모든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무신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의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며 또 신의 존재의 유효한 증명이 있을지라도 아무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
듀이(J. Dewey)는 신개념을 원망(願望)과 행동에로 인간을 촉구하는 이상적 목적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듀이는 초월적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을 인정치 않는다. 신은 재래 종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존재론적 실체가 아니다. 신은 여러 가지 양태의 이상적 가치의 통일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런 통일은 사유와 상상의 작용이 행위에 수반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사유와 사상에 관련된다. 결국 듀이에 있어서도 재래의 신관념은 인간사유의 산물이다.
구조주의는 그 자체로서는 유신, 무신 중 어느 한 쪽의 필연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구조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들이 대부분 좌익사상가들이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무신적 성격을 띤다.
4. 무신론과 유신론 : 이 문제는 인간이 이 지구상에 사고하는 존재로 나타난 이래 인류사고의 구원(久遠)의 문제이다. 근세를 거쳐 오늘의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신론의 문제는 변증법적 과정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유신론의 부정으로서 강력한 이론적 정의적(情意的) 무신론의 대두, 그리고 현금에 이르러서는 무신론의 부정 혹은 전통적 유신론과 헌대무신론의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신론이 시도되고 있다. 이것은 데카르트 이후 줄곧 초월에서 내재로 치닫던 인류사고가 경험현상론, 의식현상론, 감각론, 유물론, 실존사상 등을 거쳐 내재 – 초월의 사상에로, 존재론에로의 방향전환과 길을 같이한다. 철학적 사고가 그럴 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의 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재정립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지난 어느 시기에 과학은 종교를 부정하는 학문으로 또 종교는 과학을 적대시하는 입장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오늘에 이르러는 오히려 가치문제, 인간의 한계문제, 윤리문제, 존재론 문제 등등 새로운 학문적 요청을 위시하여 과학자체의 한계문제 즉 과학의 발전이 질병을 몰아내어 인간생명을 연장시키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며 인간에게 시공을 주름잡는 환상적 미래를 약속하는 등 인간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과학기술의 무궤도한 발전은 인류멸망의 핵공포와 자연질서의 혼란을 야기시켜 자연의 전면적 파멸의 위기를 물고 왔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요청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삶 안에서 종교와 과학이 제 자리를 잡고 상호보충하여 인간완성에 기여해야 할 필요에 몰리고 있다. 또 신학계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신론과 이런 신론의 부정으로서의 현대무신론이 출현하였고 이런 무신사상의 영향으로 사신신학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런 사상들과 전통신론과의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신론이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鄭義采)
[참고문헌]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II, 1928 / Reallexikon fur Antike und Christentum, I, 1950 / Sacramentum Mundi, I, 1964 / Encyclopedia filosofica, I, 1968 / Encyclopedia Britanica(by C. Fabro, Atheism), I, 1974 / T.J.J. Altizer and W. Hamilton,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 1966 / E. Bloch, Atheismus im Christentum, 1968 / L. Koch, Humanistischer Atheismus, 1971 / J.B. Lotz, Atheismus kritisch betrachtet, 1971 / J. Kigl, Atheismus als theologsches Problem, 1977 / Gotthold Hasenhuttl, Einfuhrung in die Gotteslehre, 1980(심상태 역, 1983) / 정의채, 存在의 根據問題, 1981 / 정의채 외, 現代無神論, 1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