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수집해 놓은 일련의 문서들. 총 1만 3,451건에 달하는 서한(書翰) · 공문(公文) · 신문기사(新聞記事) · 전보(電報) · 유인물 · 명함(名啣) · 안내장 · 외교문서(外交文書)들로서 1871년에서 1925년까지의 교회사 및 한국사와 관련된 내용의 문서들이다. 이 문서들은 수집자인 뮈텔 주교에 의해 교회문서와 기타문서로 분류되어 보관되었고, 뮈텔 주교 사후(死後) 명동대성당 지하 고문서고(古文書庫)로 옮겨져 다른 교회자료들과 함께 보관되어 오다가 1965년 명동 대성당에 보관된 모든 교회자료들과 함께 한국교회사연구소(韓國敎會史硏究所)에 이장(移藏)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崔奭祐) 신부와 사학자 이원순(李元淳) 교수가 명동에서 온 자료들을 정리 분류하면서 이 문서들을 발견하여 이를 ‘뮈텔문서’(Documents de Mgr. Mutel)라고 명명(命名)함으로써 오늘날까지 ‘뮈텔문서’로 불리고 있다.
<뮈텔문서>는 사용된 언어에 따라 동양어(東洋語) 문서와 서양어(西洋語) 문서로 구분된다. 동양어 문서는 한글문서 390건, 국한문(國漢文) 혼용문서 126건, 한문(漢文)문서 716건, 일어(日語)문서 55건, 총 1,287건이고, 이를 문서의 성격에 따라 분류해 보면 공문서가 410건, 사문서가 652건, 교회문서가 216건이다. 동양어 문서 초기의 것은 한문으로 씌여진 것이 많고, 후기에 올수록 한글로 씌어진 것이 많이 나타난다. 서양어 문서는 총 1만 2,164건으로 라틴어문서가 2,068건, 프랑스어 문서가 9,518건, 영어(英語)문서가 571건, 독어(獨語)문서가 4건, 이탈리아어 문서가 2건, 스페인어 문서가 1건인데, 라틴어와 프랑스어 문서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서양 어문서 대부분이 교회문서이고 또 뮈텔 주교를 비롯하여 문서와 관계된 성직자들 대부분이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이다. <뮈텔문서> 속의 주요 사건 내용으로는 1886년의 한불조약(韓佛條約), 1894년의 동학혁명(東學革命) · 갑오경장(甲午更張) · 항일의병모금사건(抗日義兵募金事件), 1895년의 을미사변(乙未事變), 1896년의 아관파천(俄館播遷), 1898년의 명동 대성당 준공 및 보부상(褓負商)과 황국협회(皇國協會)의 천주교인 위협사건, 1899년의 교민조약(敎民條約) 및 천주교인들의 황성(皇城)신문사 난입사건, 1900년의 의화단(義和團) 사건, 1904년의 한 · 불 · 노 비밀 3국동맹(韓佛露 秘密三國同盟) 및 선교조약(宣敎條約), 1905년의 울릉도 영유권 분쟁, 1909년의 교회운영학교 인가에 대한 정교(政敎)분쟁 등인데, 이밖에도 많은 교민(敎民), 정교 분쟁의 내용이 들어있고, 1910년 이후의 문서들에서는 교회 내의 사목(司牧) 관계가 주된 내용이다.
<뮈텔문서>는 한 개인이 수집한 최대의 문서로서 무도 개인과 관(官)이 직접 기록한 원사료(原史料)라는 점, 그리고 이 문서들이 수집된 기간이 구한말(舊韓末)에서 일제(日帝) 초기에 이르는 한국사(韓國史)의 일대 전환기였다는 점에서 사료(史料)로서 높이 평가된다. 특히 같은 시기의 사료인 <법안>(法案), <뮈텔일기>(Journal de Mgr. Mutel) 등과의 상호보완을 통한 근대 한국의 정치·사회·사상·외교사 연구와 한불조약 이후 교회와 정부와 관계, 동학과 천주교, 188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의 교회 모습 등 근대 한국 교회사를 재조명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李元淳, 未公開史料 Mutel 文書, 韓國史硏究, 3집, 韓國史硏究會, 1969.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