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와 인물 : 미가 예언자 생존시의 시대상은 2열왕 17-20장에 잘 나타나 있다. 미가가 생존해 있던 당시는 한 마디로 비극적인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정복 야욕으로 가득 찬 아시리아는 사마리아를 함락했고(기원전 722년), 센나케립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기원전 701년). 따라서 유다 왕국의 일부는 아시리아 제국에 병합(倂合)되어, 종교생활에까지 위기를 맞을 정도로(2열왕 21장) 풍전등화의 형세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모레셋(미가 1:1, 예레 26:17) 출신의 미가는 아시리아인들에게 점령당한 펠리시대 지방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미가 1:10-15). 아시리아인들이 침공할 때 예루살렘으로 피해 온 남서지방의 농부출신인 미가(이사 14:28-32 참조)는 당시 수도 예루살렘의 귀족계층에서 조장한 사회불의를 보자 크게 분노하였다. 우리는 거칠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농부의 모습에서 그를 상상할 수 있다(미가 3:8 참조). 일면 아모스의 강직한 성품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선포한 신탁이나 설교는 동시대인인 이사야 예언자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미가 1:10-16과 이사 10:27 이하, 미가 2:1-5과 이사 5:8 이하, 미가 5:9-14과 이사 2:6 이하를 비교). 그렇지만 미가는 농촌이라는 자기 출신의 배경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예언자적 반성과 설교는 수도 예루살렘의 귀족들에게 큰 파문을 던졌다(예 : 3장의 시온의 운명). 그는 사제들 뿐 아니라 예언자들에게도 심한 독설(毒舌)을 퍼부었다. 아마 미가는 사제나 직업 예언자들과는 별다른 접촉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되게 비판한 이유는 그들의 부정직한 태도 때문이었다. 또한 미가는 그들이 신봉하고 있던 거짓 신비주의와 물질주의적 의미에 기초한 그 신비주의의 성전맹신(聖殿盲信, 미가 3:11-12)을 규탄하였다. 사람들은 미가가 성전에 대해서 규탄한 신탁을 오랫동안 기억하였다(예레 26:18).
2. 미가서의 구조 : 미가서의 짜임새는 인위적인 인상을 많이 풍긴다(Eissfeldt 참조). 그 구조는 1-3장(위협 설교, 2:12이하는 제외), 4:1-5:8(약속 말씀), 5:9-7:6(위협 설교), 7:7-21(약속 말씀)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각 부분을 미가가 직접 집필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밝히기가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협 설교들은 미가가 직접 집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3장(2:12이하 제외)과 5:9-7:6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5:9-13은 이사 2:6-8과 비슷한 내용이며 5:14는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부연된 구절이다[미가가 직접 집필했다고 주장하는 J. Willis, Anthenticity and Meaning of Micah 5:9-14, ZAW, 1969, pp. 353-368의 논문 참조]. 맏물의 봉헌(2열왕 16:3, 21:6)을 상기시키는 6:7은 시대적으로 볼 때 기원전 721년 이전의 사건을 전제로 삼고 있다. 약속의 말씀들은 아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4개의 단편(7:7-10, 7:11-13, 7:14-17, 7:18-20)으로 구성된 전례문(典禮文, 7:7-20)[Bo Reicke, Liturgical Tradition in Mic 7, Harv. Th. Rev. 1967, p. 349-367]은 유배 이후의 작품인 것 같고, 조르즈(George)도 미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스펠트(Eissfeldt) 같은 학자는 이것이 미가의 작품이라고 말하는데, 일면 그의 논증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처음에 나오는 약속 말씀(4-5장)의 저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더욱 분분하다. 이 말씀들은 질서정연한 순서에 따라 편집된 소귀절들로서, 예레 30-31장, 에제키엘서, 제2 및 제3 이사야의 영향 하에 미가 4-5장을 위해 편집된 단구들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미가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르노(B. Renaud)의 말을 빌면[B. Renaud, Structure et attache litteraie de Michee IV-V, Paris 1964, p. 86] 아무리 빨라도 5세기에 씌어진 작품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카펠루드(Kapelrud)는 상기 단구들이 사마리아가 함락되자 바로 쓰여진 전례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이스펠트는 4:1-5:8이 3:12의 저주를 보완하기 위해 미가서에 첨가된 구절이라고 하며, 다이슬러(Deissler)는 이 첨가 구절 중 4:14, 5:3, 5:5b. 9-14만이 미가가 직접 쓴 글이라고 주장한다[Les Petits Prophetes(BPC), p.299. 반대의견: J. Willis, Mic 4:14-5:5. A. Unit. VT. 1968, pp. 529-547 참조]. 그러나 조르즈는 4:9-10a. 14, 5:1-5, 8-14가 미가의 글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SDB, v. col. 1258]. 그리고 카젤(H. Cazelles)은 미가 4-5장이 미가가 직접 쓴 작품이라고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지리적 요소들이 많다는 설을 편다[H. Cazelles, “Histoire et geographie en Mi 4:6-13” Fourth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Jerusalem, 1967, pp. 87-89]. 어떻든 이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많은 이론을 제기시키고 있다[J. Willis에 의하면 3-5장은 통일된 단락으로써 ‘행복-불행’의 교차적 배어법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3. 메시지 : 미가 3:8에는 그의 메시지가 요약되어 있다. 이 구절은 한 마디로 음울한 분위기를 던져주고 있으나, 바로 이것이 미가 메시지의 동인(動因)이 되고 있다. 예언자들의 말이 언제나 공격만 받는다는 사실(미가 2:6 이하)을 잘 알고 있는 미가는 평화만을 낙관하는 설교가들의 영합주의(迎合主義)가 오히려 그들의 카리스마를 질식시키고 굴욕을 자초케 한다(미가 3:5-7)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미가는 수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그는 자기 고향을 휩쓴 아시리아의 침공을 심판의 징조로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심판을 예고한 이유는 우상숭배 때문이며, 옴리가(家)의 왕들에게서 전형적인 예(미가 6:16, 1열왕 21)를 찾아볼 수 있는 사회불의 때문이었다(미가 1:2-7, 2:1-11)[1열왕 20-22장은 미가 2장의 주해서이다. H.M. Weil, Mi 2 explique par 1R 20-22, RHR, 121, 1940, pp. 146-161 참조]. 또한 이 심판의 동기는 예부터 전해져 오던 신앙의 전승을 해석하던 당시 인간들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미가 2:6 이하, 3,11b).
미가는 아모스(아모 9:7)와 달리 전통적인 교의(敎義)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 교의란 야곱에게 베푼 축복(미가 2:7), 시온에 거하시는 야훼(미가 3:11), 이집트에서의 탈출사건(미가 1:15) 등이다. 백성들은 이러한 교의가 지닌 본질적인 면은 무시하고 허례허식에 젖은 신심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주님과 맺은 각별한 관계를 스스로 파기(破棄)하게 되었다(“너희가 …을 하였다”라는 질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가 2:8참조). 이는 바로 야훼와의 결별(訣別)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가 예언자의 메시지에는 커다란 희망도 비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백성, 아니면 적어도 남은 자(un reste, 미가 4:7, 5:2, 6:7)[R. de Vaux, Le Reste d’Israel d’apres les Prophetes, RB, 1933, p.526-539(Bible et Orient, Paris 1967, pp. 526-539) / S. Garofalo, Le nozione profetica del Resto d’Israele, Roma 1944, F. Dreyfus, La doctrine du Reste d’Israel chez le Prophete Isaie, RcScPhTh, 1955, p. 361-375 / U. Stegemann, Der Restgedanke bei Isaios BZ, 1969, p. 161-186]들에게는 이러한 희망의 서광이 비친다. 남은 자는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할 것이며’(미가 6:5), 그분의 요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정의와 헤세드(hesed, 仁慈)와 겸손(미가 6:8)은 아모스의 정의, 호세아의 사랑, 이사야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 해당한다. 미가는 이 세 가지 기본적인 덕(德)을 종합함으로써 하느님의 용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야곱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성실, 아브라함에게 표하실 헤세드는 원래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표이다(미가 7:18-20). 또한 유다산골의 농부였던 미가는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내린 약속이 실현되리라 믿었다. 영광스런 가문에서 왕이 탄생할 것이다. 그 왕은 무능하고 불성실한 이스라엘 목자들을 대신하여 왕국의 통일을 이룩하고, 하느님의 법도에 따라 그 왕족을 통치할 것이다(미가 5:1-4). 그리고 베들레헴 에프라타에서 탄생한 다윗의 후예는 인류가 염원해 온 평화의 왕자가 될 것이다. (徐仁錫)
[참고문헌] A. George, Michee(Livre de), SDB, V. col. 1252-1263, 1952/ B. Renaud, Structure et attache litteraire de Michee IV-V, Paris 1964 / A.S. Kapelrud, Eschatology in the Book of Micah VT, XI, 1961, pp. 392-405 / J. Lindblom, Micah, literarisch Untersucht, Helsinki 1929 / E. Hammershaimb, Einige Hauptgedanken in der Schrift des Propheten Miach, ST, 1961, p. 11-34 / J. Willis, The Structure, Setting and Interrelationships of the Pericopes in the Book of Micah, Vanderbilt 1966 / J. Willis, The Structure of Micah 3-5 and the Function of Micah 5; 9-14 in the Book, ZAW, 1969, p. 197-214 / L. Monloubon, Michee, in: Introduction critique a l’Ancien Testament, Paris 1973, p. 376-3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