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내원(1860-1935). 공소회장. 자(字)는 용진(龍津), 세례명은 토마스. 본관은 밀양(密陽). 충청도 정산(定山) 함박실에서 영동현감(永同縣監)을 지낸 박상호(朴尙浩)의 9남매 중 6남으로 태어났다. 병인박해 중 1868년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해미현감(海美縣監)에게 재산을 약탈당한 뒤 석방되었으나 부친은 질병으로 사망하고, 자신은 해미현감의 집에 잡혀 있다가 2년 뒤 형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1879년 권 아폴리나와 결혼한 후, 1880년 황해도 장연(長淵) 배마당으로 이주, 공소회장을 맡아보면서 그해 11월 해로(海路)로 입국한 뮈텔(Mutel, 閔德孝),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를 맞아 2개월 동안 자신의 집에서 보호하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 사실이 관가에 알려져 재산을 빼앗기고 경기도 연천군 남면 신암리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하갓둥이를 거쳐 수원 고색동에 정착, 말년을 보냈다. 1935년 1월 26일 사망, 경기도 남곡리의 양지본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2남은 박동헌(朴東憲, 마르코, 1893-1948) 신부이고 장남 원하(元夏, 필립보)의 아들이 서울교구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 신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