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혜화동(惠化洞)의 옛 지명으로 교회사적지(敎會史蹟地). 속칭 잣골, 또는 잣나무골로 불렸다. 조선조 태종(太宗) 때의 공신 조은(釣隱)이 이곳에 잣나무 숲을 만들고 그 속에 백림정(柏林亭)이란 정자를 만들었다 해서 백동으로 불렸고, 또 성균관(成均館)의 동서로 반수(泮水)가 흐르고 있어 반촌(泮村)으로도 불리다가 일제시대인 1914년 현재의 동명 혜화동(惠化洞)으로 바뀌었다.
백동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 초기부터 교회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곳이다. 1787년 10월 당시 성균관 유생이던 이승훈(李承薰)이 정약용(丁若鏞) 등 젊은 학자들과 함께 이곳 반촌에서 서학서(西學書)를 강독하다가 이기경(李基慶)의 고발로 인해 소위 ‘정미 반회사건’(丁未泮會事件)이 일어나게 되었고,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에는 장치선(張致善) · 김계교(金季釗) · 이연식(李連植) 등이 피신해 있었다. 그 후 1909년 독일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가 한국에 진출하게 되자 이곳에 수도원과 숭공(崇工)학교, 숭신(崇信)사범학교를 세웠고, 1920년 베네딕토회가 원산으로 진출함에 따라 서울교구에서 이를 인수, 1927년 혜화동본당을 창설시키고, 1929년 용산에 있던 예수성심신학교를 이곳으로 이전시켰으며, 이어 1931년 서울교구에서 운영하던 남대문(南大門)상업학교를 다시 이곳으로 이전시키고 동성(東星)상업학교로 개명하였다. 현재 백동, 즉 혜화동 일대에는 혜화동본당을 비롯하여 가톨릭대학 신학부, 동성중 · 고등학교, 교리신학원, 가톨릭학생회관 등의 교회기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 혜화동본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