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원] Byrne, J. Patrick

Byrne, J. Patrick(1888~1950).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원. 초대 평양교구장. 주교. 한국명 방일은(方溢恩). 미국 워싱턴에서 출생하여 1915년 성 마리아 볼티모어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922년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교황청으로부터 평안도의 포교권을 위임받자 이듬해 5월 평양교구 창설 준비 책임자로 내한, 이해 가을 의주(義州)에서 모리스(Morris, 睦) 신부,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와 만나 교구 창설 기초 작업을 벌이는 한편, 1924년 한국으로 파견된 메리놀회 수녀들과 신부들에게 한국어와 풍습을 익히게 하고 평북 비현(枇峴)에 임시본부를 설치하였다. 1926년 신의주 진사동에 성당을 신축하고 이어 캐시디(Cassidy, 姜) 신부로 하여금 중강진(中江鎭) 일대를 개척케 한 후, 평양을 장래 평양교구의 중심지로 선택, 서포(西浦)에 교구본부를 설치하여 이듬해 3월 17일 평양교구가 설정되자 초대 교구장에 취임하였다.

1929년 메리놀 외방전교회 총회에 참석차 귀국하였다가 이 회의에서 메리놀 외방전교회 부총장으로 피선되어 평양교구를 떠나게 되었고, 1935년에는 일본 교오또(京都)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광복이 되고 1947년 5월 12일 교황청에서 주한 로마교황사절관을 창설하게 되자 이해 10월 9일 교황사절로 내한, 대한민국을 승인하는 교황청의 승인서를 발표하는 한편 외교가로서 수완을 발휘하여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49년 주교로 승품되어 이해 6월 14일 명동성당에서 뉴욕교구 보좌주교 맥도날드(McDonald) 주교의 주례로 주교로 성성되었고, 이 때 평양교구장 홍용호(洪龍浩) 주교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자 번 주교는 북한에서의 종교박해와 성직자들의 체포, 투옥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였는데, 이에 대한 북한 공상정권은 평양방송을 통해 만약 번 주교가 자기들에게 붙잡힌다면 무서운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 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외국인 신부들을 일본으로 피난시키고 교황사절관을 지키다가 7월 11일 비서인 부드(Booth, 未)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7월 19일, 평양으로 이송되었고, 만포(滿浦), 고산진(高山鎭), 초산(楚山) 등 여러 곳을 끌려 다녔다.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까지 만포에서 중강진에 이르는 250리길을 도보로 끌려가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 중 11월 25일 중강진 부근 하창리(下昌里)에서 갖은 고초와 수난 끝에 병사(病死)하였다. 임종 때 “나는 성직의 영광을 받은 후로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이 내 생애 중 가장 큰 영광이었다고 생각하오. 우리들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내 소원이었소. 착하신 하느님께서 이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할 뿐이오”라고 최후의 말을 남겼다. 1955년 미국 뉴욕에서 번 주교의 친구인 만주 무순(撫順)교구장 레이먼드(Laymond) 주교가 저술한 번 주교의 순교기 ≪쇠사슬에 얽힌 대사≫(Ambassador in chain)가 출간되었다.

[참고문헌] 韓龍換 · 徐相堯,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 天主敎平壤敎區史,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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