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한] 法 [라] jus [영] law [독] Recht [프] droit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생활을 규율하기 위한 질서규범을 가리키는 것인데, 가톨릭 교회와 신학은 사회생활과 교회질서의 건전한 수립과 운영을 위하여 법의 문제에 관심이 깊다. 법은 단순히 강제적 규범이 아니라, 정의(正義)와 같은 법이념을 지향하는 가치적 규범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나 법학적으로 심오한 뜻과 복잡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 신학에서 법은 양심(良心)과 안팎의 관계에 선다. 인간의 규범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행위자와는 독립되어 하느님에게서부터 직접 간접으로 제정된 객관적 규범이 법(jus 혹은 lex)이요, 하나는 행위자에게 종속된 주관적 규범, 즉 객관적 규범(법)이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해야 할 행위에 적용된 것을 양심(conscientia)이라 한다. 법은 넓은 의미에서 도덕률(道德律, lex moralis)에 속하며 인간에게 윤리적 의무를 부과하는 명령의 하나이다. 윤리적 목적은 인간에게 실천적 필요성을 부과하고, 그 윤리적 활동에로의 형상(形相)으로서 인간에게 미리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즉 지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파악되어지는 명령이라는 형태로 부과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이성(理性)에 필요한 목적으로서의 질서라고 정의할 수 있다(St. Thomas). 법은 실천적 이성의 작용을 통하여 제정되며, 자유의지(自由意志, Willensfreiheit)의 표현이기도 하다(F. Bockle).

신학에서 법은 크게 신법(神法, lex divina), 자연법(自然法, lex naturalis), 인정법(人定法, lex humana)으로 나눈다. 영구법(永久法, lex aeterna)이라고도 불리는 신법은 모든 피조물의 행위와 운동을 소정(所定)의 목적에로 인도하시는 신적 지혜(Divina sapientia)로서, 신(神) 당신의 직접적 계획이며, 모든 법 중에 으뜸가는 계시된 법(lex revelatio)이다. 이것은 구약(아모 1:2, 이사 2:1-4, 예레 4:5-7, 에제 16:35-41, 다니 22:31-45, 욥기 12:13-25, 지혜 7:22, 잠언 8:14-15)과 신약(마태 10:29-31, 루가 12:6-7, 24-28, 마태 6:26-31, 1고린 2;7, 에페 3:9-11)에 기록되어 있다. 영구법은 교부 신학에서 성 아우구스티노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는 하느님의 지혜 안에서 살아 있는 영원하고 불변적인 법 안에서 시대의 변화를 예견한다고 하였다. 성 토마스도 영구법을 그의 ≪신학대전≫ 제2부에서 체계적으로 고찰하였는데, 그는 아우구스티노의 교의를 받아들이면서도 계시(啓示)의 가르침, 특히 지혜에서 영구법의 개념을 설명하였다. 신학자들은 영구법을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 자체와는 구별하고 있다. 영구법은 신적 의지보다는 신적 이성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학적으로 새법(lex nova)이란 개념도 사용되고 있는데, 새법은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St. Paul, 로마 8:2)이요, ‘그 안에 원리적인 것은 성령의 은총’(St. Thomas)이다. 성령을 통해서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는 새법은 그리스도이다. 새법의 개념은 복음서(마태 7:28-29, 8:18-22, 마르 1:21-27, 루가 4:31-36, 요한 8:12, 9:5, 10:45, 12:6, 16:27)와 사도들의 가르침(1베드 1:14-15, 2:4-5, 갈라 2:24, 5:1, 로마 7:1, 10:4, 1고린 9:21), 그리고 교부들과 신학자들(Origenes, Augustinus, Irenaeus, Clemens, Bonaventura, St. Thomas, Francisco 학파, Petrus 추기경) 등이 설명하고 있다. 이 새법은 영구법을 나타내 주는 것이고, 영구법의 가장 완전한 참여이다.

새법을 준비하는 법으로 자연법이 있고, 새법을 이 세상에서 실천해 나가는 법으로 인정법(人定法)이 있다(자연법에 대하여는 자연법항목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인정법은 입법자의 주체로 보아 교회법(lex ecclesiatica)과 국가법(lex civilis)으로 나눌 수 있다. 교회법은 자연법을 규정하고 완성하는 것으로서 교회와 그 구성기관에 의해서 정해진다. 교회법에는 교회내법(Inneres Kirchenrecht)과 국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국가교회법(Staatskirchenrecht)이 있다(자세히는 교회법 항목에서 설명한다).

국가법은 크게 국제법과 국내법으로 나누어지는 데, 국내법은 일반적으로 공법(公法, public law), 사법(私法, private law) 및 사회법(社會法, social law)으로 3분된다(자세히는 후술). 가톨릭 교인은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국가법을 준수해야 한다(잠언 8:15, 마태 22:21, 2베드 2:13-15, 로마 13:1-2,5-7). 다만 국가법이 신법과 자연법에 위배될 때에는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인정법이 양심의 법정에서 인간에게 어떻게 그 필요성을 부과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 토마스는 만일 그것이 정당한 것이면 양심에 의무를 지우는 힘을 갖는다고 하였다. 교회의 교도권(敎導權)도 국가법에 대한 순종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에서는 “교회는 지상(地上)권력에 대한 순명(順命)과 존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바이다. 대저 지상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그 고상한 사명을 이행하고 스승께서 하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는 가르침을 준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법학에 있어서 법은 신학에서 말하는 인정법만을 의미하는데, 이때의 법은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들의 분배 및 협력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규범체계로 파악된다. 법은 그 효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직적인 강제(Zwang)의 뒷받침을 받는다는 점에서 도덕과 구별되며, 그러면서도 법은 도덕, 종교, 관습 등의 다른 사회규범과 관련을 갖는다. 법률(Gesetz)이라 하면 법(Recht)을 성문화(成文化)한 조문(條文)이나 법전(法典)을 말하는 것으로 법보다는 협의의 개념이다. 그러나 형식적 의미에서의 법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 공포함으로써 성립되는 국법의 하나인 법률(Statute, Gesetz, loi)을 의미한다. 이것은 행정부의 명령이나 입법부, 사법부의 규칙과 구별된다. 법률은 헌법에 다음가는 법규이며, 명령규칙이 법률에 위배되면 법원에서 그 적용이 거부되며, 또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어도 법원은 이의 적용을 거부하고 위헌법률심사(違憲法律審査)의 문제가 대두된다.

법이 추구해야 할 이념으로는 일반적으로 정의(正義), 합목적성(合目的性), 법적 안정성(法的安定性)을 들고 있다(G. Radbruch).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는 항구적 의지’(suum cuique tribuere)를 뜻하며, 여기에다 형평(衡平, equity, Billigkeit)을 보충원리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어디까지나 형식적 이념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담아 주는 것으로 합목적성이 필요하다. 이 합목적성의 선택에 따라 국가와 개인은 자유주의적이 될 수도 있고, 단체주의적이 될 수도 있으며, 문화주의적으로 될 수도 있다. 가령 민주주의 국가를 선택한다면 여기에는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그 이념가치로 지향된다. 그런데 법은 인간사회에 있어서 객관적 행위규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정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런 점에서 법적 안정성은 가장 가까운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법의 지배’(rule of law),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지배가 잘 이루어지려면 법에 대하여 국민이 가지는 인식, 즉 법의식(Rechtsbewusstsein)이 앙양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법전에 씌어진 법(written law)을 살아있는 법(living law)으로 실천할 수 있다. 법감정(法感情, Rechtsgefuhl)은 법에 대한 직관적 가치감정이고, 이 법감정에 기초하여 의식화된 구체적 가치의식이 법의식이다. 법의식은 이미 생활화되고 역사화된 경험적 가치의식이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한국인은 ‘경위’(涇渭 혹은 經緯)를 따지는 법감정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체계화되어 한국인의 고유한 법의식을 형성하여 왔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법이란 말에 해당하는 서양어 [영] law [독] Recht [프] droit는 모두 ‘정당한 것’을 뜻한다. 한국어는 ‘法’이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법’이란 글자의 약자이다. ‘법’이란 고대 중국의 묘족(苗族)이 신의재판(神意裁判, Gottesurteil)에서 해태(치)를 중간에 갖다 세우면 해태는 반드시 물과 같이 공평하게 죄지은 자에게로 가서 뿔로 떠받는다 하여 ‘해태 치’(-)와 ‘물 수’(水)와 ‘갈 거’(去)자를 합자(合字)한 것이다. 법에 해당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본’이라는 주장도 있다(田鳳德).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통적으로 중국법의 영향권 안에 있었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서양법을 받아들여 근대적 법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서양법의 수용(受容, Rezeption)이라고 부르는데, 중국, 일본, 한국은 서양의 법률과 법 이론을 거의 공통적으로 한문식 법률용어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글을 두고 한문식 용어를 쓰기 때문에 한국 법문화의 발달과 대중화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도 있어, 이것은 법언어학(法言語學)의 연구과제를 이룬다. 아무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법률용어는 1680년대부터 중국·일본을 거쳐 번역된 용어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일정한 법원리에 의하여 통일되어 개개의 법규범 또는 조직으로 법체계(法體系, legal system)를 이룬다. 법체계는 앞서 지적한 국제법 체계를 빼고 국내법 체계만 보면, 공법(公法)의 영역에는 헌법, 행정법(行政法), 형법(刑法),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이 포함되고, 사법(私法)에는 민법, 상법이 속하고, 사회법(社會法)에는 노동법, 경제법, 사회보장법 등이 속한다. 이 밖에도 조세법(租稅法), 무체재산법(無體財産法), 환경법(環境法), 우주법(宇宙法) 등 ‘체계화’를 논하기 어려울 방대한 법역(法域)이 존재한다.

법의 올바른 제정과 운용을 위하여는 법학의 지속적인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로마시대부터 법학(Jurisprudenz)이 발전하여 중세의 대학의 중요학문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서양법학은 교회법과 로마법의 주석에서 출발하였고, 이 교회법과 세속법(世俗法)을 모두 공부하여 끝마친 사람에게는 양법박사(兩法博士, doctor iuris utriusque) 학위를 수여하였다. 오늘날에도 서양에서 법률가들은 성직자와 비슷한 가운을 입고, ‘세속적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생활과 사고(思考)에 있어 정결한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법학은 기초법학과 실정법학으로 나누이고, 기초법학에서는 법사학(法史學), 법철학, 법사회학(法社會學), 법심리학, 법정책학, 입법학(立法學), 법신학(法神學) 등의 영역이 있고, 실정법학은 위의 법체계에서 본 대로 헌법학, 행정법학, 소송법학, 민법학, 상법학, 사회법학, 국제법학 등으로 대별(大別)된다. 법학은 광의의 사회과학에 속하면서도 개념과 논리, 그 추상성으로 인문과학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특히 신학과 유사한 도그마틱한 면도 농후하다. 세계의 법문화(法文化, legal culture)는 대륙법학, 영미법학이라는 구별을 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은 대륙법문화와 대륙법학에 속하고 있다.

한국의 법은 크게 전통법과 대륙법으로 나누는데, 전통법은 3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주로 중국법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되어 왔다. 전통법의 법전으로는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 1394), ≪경제육전≫(經濟六典, 1397), ≪경국대전≫(經國大典, 1471), ≪속대전≫(續大典, 1746), ≪대전통편≫(大典通編, 1785),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이 있었다. 법학은 율학(律學)이라 하여 잡학(雜學)의 하나로서 형조(刑曹)의 율학청(律學廳)에서 관장하여 가르쳤고, 졸업한 율사(律士)는 행정관리의 재판업무를 보조해 주는 하급관리에 머물렀다. 근대적 서양법학이 한국에 전래된 것은 17세기에 중국을 거쳐 실학파 학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최초로 서양법학을 소개한 책은 예수회 신부 알레니(J. Aleni)가 쓴 ≪서학범≫(西學凡, 1623)과 ≪직방외기≫(職方外紀, 1623)였다. 이런 책은 초기의 한국 천주교인들이 소장하고 탐독하였다. 그러나 신후담(愼後聃) 등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서양법학은 도의를 가르치기보다 기술을 가르치는 천학(賤學)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래서 실학시대와 가톨릭 교회를 통한 서양법학의 수용은 초기수용(Fruhrezeption) 내지 반수용(反受容, Gegenrezeption)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서양법이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는데, 그 중에도 중국에서 선교사 마틴(William A.P. Martin)이 번역한

국제법학서≪만국공법≫(萬國公法, 1864), ≪공법편람≫(公法便覽, 1877), ≪공법회통≫(公法會通, 1880)등이 큰 영향을 주었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이듬해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가 설립되고, 1899년에 최초의 근대적 헌법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가 제정되었다. 그 후 많은 ‘개화입법’(開化立法)이 이루어졌지만, 1905년부터 일본의 침략정책에 의하여 ‘종이 위의 개화’와 ‘말로만의 법’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주교회가 경영한 <경향신문>이 한국인의 진정한 법의식을 계몽시키는 법률계몽 운동을 전개한 것은 의의가 크다. 일제시대에는 한국에도 일본법이 의용(依用)되었고, 한국 법학은 준(準)일본법학으로 되다시피 위축되었다. 광복 후 비로소 법의 제정과 법학의 건설을 자주적으로 실시하여 상당한 성장과 안정을 이룩하였다. 방대한 법령의 입법, 법원 및 법과대학의 설립으로 한국 법문화와 한국 법학의 지반을 다져 가고 있다. 그러나 국토 분단을 통한(권리와, 자유보다) 안보(安保) 위주의 상황, 혁명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한국법과 법학의 발전은 상당한 장애요인을 안고 있다. (崔鍾庫)

[참고문헌] 崔曾漢, 法學通論, 1983 / 李恒寧, 法哲學槪論 / 崔鍾庫, 現代法學의 理解, 1984 / 金哲洙, 法과 社會正義, 1983 / 李太載, 自然法槪論 / 崔鍾庫, 法과 宗敎와 人間, 1981 / 崔鍾庫, 法恩想史, 1983 / G. Radbruch, Rechtsphilosophie, 崔鍾庫 譯, 법철학 1975 / J. Ellul, Die theologische Begrundung des Rechts/ K. Barth, Rechtfertigung und Recht, 1938/ H. Doubois, Das Recht der Gnade / A. Kaufmann, Die ontologische Begr ndung des Rechts, 1965 / W. Steinmuller, Evangelische Rechtstheologie, 1968 / G. Radbruch, Aphorismen zur Rechtsweisheit, 崔鍾庫역, 法學의 精神, 1982 / H.L.A. Hart, The Concept of Law, 1961 / H. Kelsen, The Pure Theory of Law / R. Pound,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Law, 1923 / 李恒寧 · 金麗洙 譯, 法哲學入門, 1960 / 田鳳德, 韓國近代法思想史, 1981 / 崔鍾庫, 韓國의 西洋法受容史. 1982; 法史와 法思想, 1981; 韓國法學史, 1984 / Chongko choi, On the Reception of Western Law in Korea, Korean Journal of Comporative Law, vol. 9, 1981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1975 /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41항 /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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