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종(1895-1977) 연극인. 본관(本貫)은 초계(草溪). 원명은 창규(昌圭), 기종(基鍾)은 예명. 호(號)는 남계(南溪), 세례명은 마르코. 서울에서 태어나 계성보통학교를 졸업. 1911년 ‘혁신단’(革新團)의 연극 <진중설>(陣中雪)을 보고 감명 받아, 1912년 천주교인 박창한(朴昌漢)의 후원으로 극단 ‘청년파일당’(靑年派一黨)을 창단했으나 곧 재정난으로 해산하고 ‘유일단’(唯一團)에 입단하였다. 그 뒤 1916년 ‘예성좌’(藝星座), 1918년 ‘신극좌’(新劇座), 1922년 ‘조선극우회’(朝鮮劇友會) 등을 창단하고 이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조선극우회’를 이끌고 만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일경제 의해 ‘조선극우회’가 해산되자 1927년 다시 지두한(池斗漢)과 함께 ‘조선연극회’(朝鮮硏劇會)를 창단, 이후 10년간 만주 일대에 사는 동포들을 찾아 순회공연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고 이로 인해 투옥되기도 하였다. 1936년 동양극장(東洋劇場) 산하 ‘청춘좌’(靑春座)에서 활동하다가 8.15광복 후 ‘자유극장’(自由劇場), ‘자유극회’(自由劇會), ‘창조무대’(創造舞臺), ‘민극’(民劇) 등을 창단했고 1957년 국립극단장(國立劇團長), 예술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교회활동으로는 1960년 이후 10년간 돈암동 본당 총회장으로 본당의 레지오 마리애, 연령회 등을 활성화시켰고, 이어서 가톨릭 연예인협회의 고문으로 추대되어 가톨릭 연예인들의 상호협력과 대외활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