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正義)를 분배의 균등이라고 정의(定義)하였다. 즉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된 부(富)가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히 분배될 때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원시공동체 사회의 해체와 함께 형성된 계급사회에 있어서 분배정의는 한갓 구호에 불과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분배는 항상 불균등 그 자체였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제외된 무산노동자 사이에 분배의 불균등은 크게 확대 · 심화되었다. 자본가는 자신에게 귀속되는 부의 양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압적으로 강요하였다.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부당하고 비인격적인 대우, 실업이라는 사회악을 노동자에게 전가시켰다. 이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여 두 계급을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이 한 국가 내에만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에 퍼졌다”(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바오로 6세, 1967). 국제 사회에서는 선진국에 의한 후진국의 제국주의적 혹은 신(新)제국주의적 지배는 선진국에 의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시켜 선진국을 풍요의 삶으로 인도하는 대신, 후진국을 기아와 빈곤의 늪으로 빠뜨렸다. 또 선진국의 지배권쟁탈을 위한 식민지전쟁은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명살상의 대비극을 초래하였다. 분배정의는 이제 단순히 구호로만 그치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로 되었다. 세계 주교회의에서는 <세계 안의 정의>라는 메시지를 통해 “현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하지 않는다면 모든 권력과 부와 결정권은 일부 소수의 지배층에 귀속되고, 인류는 파멸로 빠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참여의 봉쇄 등의 상황을 무시하고서 인간의 기본권과 시민권은 결코 찾을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만큼 정의에서 벗어나 있다. 필요한 것을 빼앗기고, 무슨 일을 시작할 수도 없고, 직업을 택할 수도 없으며, 문화적 · 사회적 ·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마저 거부당한다면 부당한 침해를 폭력으로 몰아 내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국제적인 불균등, 국내에서 가진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불균등이 하루 빨리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됨을 강조하였다.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와 교사>(1961)는 분배정의에 대한 가톨릭적인 입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 즉 “국가적인 면에서 최대다수의 노동자가 고용될 것, 임금과 물가 사이의 균형이 유지될 것,
모든 부와 시설이 국민 최대다수에게 이용될 것, 각 산업부문 사이에 불평등이 해소될 것” 등이며 “국제적인 면에서 각국간의 부당한 경쟁과 불균등이 해소될 것, 실제적 이해성을 가지고 국가간에 협력을 도모할 것, 경제적으로 후진지역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것” 등이 회칙의 정신이다. 분배정의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주의와 관심은 항상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주어져야 함은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주장된 바 있다. (⇒) 정의
[참고문헌] R. Niebehr, ed. D.B. Robertson, Love and Justice, 1957 / P. Tillich, Love, Power and Justice, 1960 /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이해남 역, 1961 / 가톨릭출판사 편, 사회정의 : 가톨릭의 입장, 1976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 김남수 역, 1967 / 池學淳, 정의가 강물처럼, 19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