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논쟁 [한] 三章論爭 [라] controversia de tribus capitulis [관련] 그리스도론

신학자 3인과 그들의 저서를 둘러싸고 행해진 6세기의 논쟁. 그 동기는 그리스도 단성론을 받아들인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분열의 위기에 처한 제국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치루스의 테오도레도, 에데사의 이바스 등 안티오키아의 신학자 3명을 네스토리우스파로 단죄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황제의 아 단죄 칙서(543)는 곧바로 서방교회의 강력한 반발을 유발시켰다. 대부분의 주교들은 3인의 신학자들이 저술한 내용이 네스토리우스파의 이단을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 네스토리우스파 문제는 일찍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비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리스도 단성론을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 동방의 여러 주교들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에 소환된 교황 비질리오(Vigilius)에게 그 칙서를 승인하라고 강요하였다. 이에 교황은 이 칙서를 승인했고 서방주교들의 격렬한 항의에 직면하여 승인을 취소하였다(550년). 551년 황제는 또다시 3인의 신학자들을 공격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 제 5차 공의회를 소집하였다(553년). 교황 없이 열린 공의회는 황제의 칙서를 승인했고, 황제는 교황을 협박하여 또다시 승인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동방과 서방간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교황직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삼장논쟁은 일부 지역에서 70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 그리스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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