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본당 [한] 西歸浦本堂

1898년 제주도 중문면(中文面) 색달리에 사는 양(梁) 베드로가 선교사를 맞을 터전을 마련하고 뮈텔(Mutel, 한국명 閔德孝) 주교에게 요청하여, 다음해인 1899년 뮈텔 주교는 제주도의 선교사로서 페네(Jean-Chales Peynet, 裵嘉祿) 신부와 한국인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임명, 부임케 하였다. 제주본당(濟州本堂)을 제주 성내에 설치, 발족한 이후 두 신부는 성당이 비좁아 1900년 9월 정의군 서홍리(旌義郡西烘里) 한논[大畓] 즉 서귀포부근에 또 하나의 본당을 분리독립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서귀포본당’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901년 제주도 신축(辛丑)교난 사건으로 한논본당으로 지칭되던 이 본당의 초대(1898. 12. 1~1922. 5. 30) 신부인 타케(Emilius J. Taquet, 嚴) 신부는 사실상 난동사건이 타결된 뒤인 1902년 4월 23일 부임하였고, 그는 뒤에 이 본당을 서흥리로 옮겨(현 복자수도원 소재지) 한때 ‘서홍리 본당'(西烘里本堂)으로 불리게 되었다. 1934년 당시 신자수는 150명, 예비신자 20명이었다. 페네 신부는 본디 식물학자였으므로 벚나무의 원종(原種)을 발견하고, 밀감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제주도의 산업발달에도 많은 공헌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 소집응소되었다.

2대(1922. 6. 1~1923. 3. 17) 이경만(李景滿, 요한) 신부, 3대(1923. 3. 17~1926. 2. 21) 이필경(李弼景, 안드레아) 신부, 4대(1926. 3. 1~1929. 4. 4)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5대(1929. 4. 5~1931. 12. 25) 허일록(許日祿, 다두) 신부, 6대(1932. 1. 1~1932. 7. 24)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7대(1932. 9. 25~1936. 5. 1)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신부, 8대(1936. 5. 2~1952. 4. 22) 라이언(Tomas Ryan, 羅) 신부 때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1937년 8월 5일 서귀포 서홍리본당은 현 서귀포시 서귀포동 586번지의 서귀포 성당으로 이전하였으며, 주보성인을 바드리시오 성인으로 하여 새 명칭으로 호칭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9대(1952. 4. 23~1953. 4. 4) 새비지(John Savage, 元) 신부, 10대(1953. 4. 5~1956. 4. 13) 로한(Patrick Lohan, 韓) 신부, 11대(1956. 4. 14~1960. 12. 30) 브래디(Robert Brady, 牟) 신부, 12대(1961. 1. 1~1963. 10. 18) 로셰(John Roche, 廉) 신부, 13대(1963. 10. 18~1969. 12. 15) 애젤(Howard Eisel, 梁) 신부, 14대(1969. 10. 20~1971. 9. 20) 퀸(John Quinn, 高) 신부, 15대(1971. 9. 20~1972. 10. 24) 김병준(金丙準, 요한) 신부, 16대(1972. 10. 25~1975. 2. 3) 새비지 (John Savage, 元) 신부, 17대1974. 4. 10~1979. 5. 23) 매귀어(Desmond Maguire, 梅) 신부를 거쳐 18대(1979. 5. 29~1983. 2. 9) 러셀(John Russell, 薛) 신부 때인 1980년 9월 16일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분원을 설립하였다. 19대(1983. 2. 9~현재) 주임신부는 고승헌(高升憲, 마르코) 신부이다. 현재 제주교구 관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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