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제 [한] 徐昌濟

徐昌濟(1889-1971). 국어학자. 교리교사. 세례명은 토마스. 1899년 7월 6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상우남면 상장동에서 태어났다. 18세까지 유학자 이죽계(李竹溪)의 문하에서 한학(漢學)을 배웠고, 캐나다 북장로교에서 설립한 함흥 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를 1920년 졸업하고 보신중학교(普信中學校)와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 뒤 성직을 희망, 전도사를 거쳐 1932년 목사 안수(按手)를 받고 기독교 복음교회 목사로 재직하는 한편, 1945년 청진(淸津) 관북대학(關北大學), 1947년 한양대학(漢陽大學)에서 국어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개신교 교리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1949년 목사직을 사퇴한 후 6.25동란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 그곳에서 ≪교부들의 신앙≫ 을 감명 깊게 읽고 그 책의 역자(譯者) 장면(張勉) 박사의 권면으로 개종, 1952년 8월 15일 부산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산골 벽지와 나환자촌을 순회하며 전교하는 한편 서울대학교와 가톨릭대학에서 국어를 강의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주교회의 산하 가톨릭공용어위원회의 위원으로 교회용어의 개정, 토착화에 공헌하였다. 1971년 6월 26일 지병인 동맥경화증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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