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 [한] 善功

일반적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을 통틀어서 가리키지만, 천주교에서는 ‘선행'(善行) 또는 ‘선업'(善業)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거나, 신앙심의 노력이나 업적을 뜻할 때도 쓰이는 말이다. 그렇지만 엄격히 보면, 이 ‘선공’이란 ≪한불자전≫(韓佛字典)의 풀이에 따를 경우, ① 적선(積善), 또는 적선사업 즉 자선(慈善)사업을 지칭할 때의 ‘선업'(bonne oeuvre, bonnes oeuvres)을 뜻하며, ②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업적(oeuvre meritoire)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래서 ‘성로선공'(聖路善功)이라고 하면 ‘십자가의 길’을 가리킴이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배교한 최해두(崔海斗)의 <자책>(自責)이라는 글에 의하면 “영혼이 결정(潔淨)하여 주 강림하사 총광(寵光)을 잃지 않으면, 자연 선공에 부지런하고 스스로 낙(樂)이 나려니와” “이러므로 성현의 선공하신 일을 보건대” 또는 “선공하신 자의 자취를 보니” 등 ‘선공’이라는 말을 주로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찬양할만한 업적의 의미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를 적선 또는 자선의 뜻으로 사용할 경우 그리스도의 말씀에 바탕을 둔 애덕(愛德)의 7가지의 실천사항 즉 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②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③ 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고, ④ 집 없는 자에게 머무를 곳을 제공하고, ⑤ 병자를 방문하고, ⑥ 감옥에 있는 자를 방문하고, ⑦ 죽은 자를 장사지내 주는 일 모두가 ‘자선사업’ 즉 ‘선공’에 속하는 일이 된다. 본래 가톨릭 교회가 덕을 중시하게 됨에 따라 자선은 중요 덕목의 하나가 되었다. 칼빈은, 가톨릭적인 덕을 비탄하고 자선에 대하여도 비판적이었지만, 이윽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신앙의 당연한 귀결로서 사회구제의 모든 활동을 활발히 실행하게 되었다. ‘선공’이라는 옛말의 의미내용 속에는 이렇게 덕의 관념과 부합되는 ‘자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고, 보다 광범한 의미에서 존경할만한 행동이나 업적을 모두 이 말로써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순교자와 증거자들,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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