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칭 C.M. 1625년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de Paul, 1581-1660)가 프랑스에서 묵상, 신심수련, 사제 양성, 외방선교 등을 목적으로 창설한 남자수도회. 창설 당시 본부가 파리 성 라자로가(街)에 있었기 때문에 ‘라자리스트회’라고도 하며, 또 창설자의 이름에 따라 영어(英語) 사용권에서는 ‘빈첸시오회'(Vincentians), 스페인어 사용권에서는 ‘바오로회’라고도 한다. 그러나 공식 명칭은 선교수도회이다. 선교수도회는 1632년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인가를 받은 후 17~8세기 동안 유럽 각지와 중국 등 10여개 국가에 진출하여 활동을 전개했으나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기간 동안에는 거의 활동을 중지했었고,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 조직을 정리하고 정비하여 교우들의 묵상 · 신심 지도, 신학교 운영, 선교활동, 외방 선교지에서의 방인사제 양성, 제 과학의 연구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서거 300주년이 되던 1960년에는 세계 64개국에 진출, 6,000여명의 회원을 갖는 거대한 수도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선교수도회와 한국 교회와의 관계는 선교수도회의 중국 진출에서 비롯된다. 선교수도회는 1697년 중국에 진출하여 1773년 예수회가 중국에서 해산되자 1784년부터 프랑스 예수회의 북당(北堂)의 선교사업을 계승하게 되는데, 1790년 북경(北京)의 선교수도회 책임자 겸 북당 주임신부 로(Raux, 1754-1801)는 북경에 온 조선 교회의 밀사 윤유일(尹有一)을 만나 그에게 세례를 주고, 그를 당시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1808) 주교에게 소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