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鍾完(1915-1976). 신부. 성서학자. 성모영보수녀회 설립자. 세례명 라우렌시오. 1915년 8월 8일 강원도 원주군 신림면 용암리(江原道 原州郡 神林面 龍岩里, 속칭 용소막) 544번지에서 부(父) 선치태(宣致台)와 모(母) 정지영(鄭致永)의 독자로 출생. 1923년 신림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1927년 원주읍 봉산(鳳山) 공립보통학교로 전학, 졸업 후 1931년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 乙組)에 입학,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2월 14일 춘천교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일본에 유학, 1944년 중앙대(中央大)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했다. 1945년 5월 귀국, 천주공교신학교 교수, 1947년 성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1948년 다시 로마로 유학하여 성 우르바노대학 4학년에 편입, 1949년 동 대학을 졸업하였다. 1950년 로마 안젤리쿰대학 신학연구과, 1951년 로마 성서대학 연구과, 1952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성서연구 대학원을 수료하고, 귀국 후 가톨릭대학교수로 임명되어 선종할 때까지 후배양성과 성서연구에 몰두하였다. 1958년 구약성서 제1편 ≪창세기≫를 비롯, 1963년까지 구약성서를 1, 2, 3, 4, 5, 6, 10, 12, 13편으로 나누어 번역하였고, 1957년부터는 수도회 설립을 목표로 메추리를 사육, 거기서 얻은 수익금과 유산(遺産)으로 물려받은 고향의 전답을 처분하여 1958년 경기도 부천에 대지를 구입하고 1960년 3월 5일 3명의 수녀지원자로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였다. 1967년 수녀원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幕溪里)로 이전하고 자립을 위해 메추리, 칠면조, 젖소 등의 사육과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한편 미사용 포도주를 제조케 하여 1969년 수녀원에 피정의 집을 완공하였다. 1968년부터 8년간 신구약성서 공동번역의 가톨릭 전문위원으로 성서번역사업에 힘을 쏟아, 선종 전날 병상에서 원고교정을 모두 마치는 정열을 보였다. 1976년 7월 11일 간암(肝癌)으로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 중 선종, 과천 성모영보수녀원 내에 안장되었다.
주요 역서로 ≪창세기≫(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8), ≪출애급기 · 레위기≫(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민수기 · 신명기≫(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여호수아 · 판관기 · 룻기≫(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사무엘 전후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열왕기≫(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성영≫(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이사야 예언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9), ≪예레미야예언서 · 애가 · 바룩 예언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3)와 유고집 ≪그리스도를 따라서≫(성모영보수도회, 1977) 등이 있다.
[참고문헌] 성모영보수녀회 編,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신부 유고집, 성 바오로출판사,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