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신학 [한] 聖書神學

1. 예비 지식 : 성서신학은 어느 한 개념으로 정리할 수 없다. 성서와 관계된 신학이라는 일반적 개념을 근거삼아 성서 신학과 역사의 이해는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의 역사성 때문에 나타난 여러 형태의 신학을 하나의 성서신학으로 묶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는 다양한 신앙 또는 신학의 내용을 어떤 공통된 문맥 안에서 정리하는 것이 성서신학의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 문맥을 정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성서의 이해와 해석의 문제와 연결되므로 이 이해와 해석 여하에 따라 성서신학도 어로 다르게 제시될 수밖에 없다.

2. 구약 신학 연구의 역사 : 성서 연구 및 주해는 중세기 후반까지 교의신학(敎義神學)과 구별하지 않고 그 증명으로 씌었을 뿐이고 구약은 신약의 전형(Typus)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인문주의와 계몽사상이 대두되면서 비로소 성서에 대하여도 학문적 고찰을 하게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과거 역사 및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지난 세기에는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의 종교를 발견하면서 종교사적 역사관이 크게 각광을 받았다. 이런 일반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구약 신학역사를 살필 때 쉽게 이해된다. 구약 신학이라는 이름을 C. Zeller(1652)에게서 처음 나타난다(J Ths NS 6[1955] p. 214참고). 독립된 학문으로 취급한 사람은 J. Ph. Gabler(1787)이고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을 구분한 사람은 G.L. Bauer(1787)이다. 그 후 W. Vatke(1835), H. Schultz(1896), G.F. Oehler(1891), A. Dillmann(1895) 등이 체계적 관점에서 구약 신학을 다루었다. 그 후 R. Smens(1920) F. Giesbrecht(1908) K. Budde(1912), R. Kittel(1929) 등이 구약신학을 다루었다. 이들의 저술은 구약신학이라 일컫지 않고 각각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구약신학을 이스라엘의 종교사로 바꾸어 명명하였다. A. Kayser(1970), E. Kautzsch(1911), B. Stade와 A. Bertholer(TI 1905, Ⅱ 1911) 등은 그들의 저술을 구약신학이라고 일컬었다. 이때는 범 바빌로니즘(Pan-babylonismus)이 학계에 풍미하던 때였기 때문에 구약신학을 종교사의 차원에서 다루었다. E. Konig(41923), E. Sellin(1933) 등은 구약 신학을 종교사로 보지 않고 조직적으로 정돈하여 서술하기 시작하였다. 가톨릭 측에서는 시대사조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에 구약성서신학 연구를 조금 늦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P. Scholz(1861∼1862)가 구약신학을 다루었고, 그 후 N. Peters(1913), F. Ceuppens(1938∼1950에 거쳐 구약신학을 펴냄), P. Heinish(1940), Pvan Imschoot(TI, 1954, TⅡ, 1956) 등이 구약신학을 연구하여 책으로 펴냈다.

3. 방법과 구성 : 구약신학의 방법이나 구성은 구약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약을 종교사의 관점에서 보는 경우에는 시대적 발전이 구약신학 서술의 뼈대를 이룬다. 따라서 성조→모세→예언자→귀양후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B. Stade, A. Bertholer, E. Kantzsch, R. Kittel, A. Lods). 이 경우에 어떤 일관된 사상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반대로 반복하게 되는 약점이 있다. 종교사적 관점을 따르지 않는 경우 어떻게 조직적으로 구약신학을 일관성 있게 펴낼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아직도 의견이 구구하다. 전통적 교의 또는 윤리 신학의 구분을 따를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유기적이며 사실에 입각한 신학 구조를 찾기 위해 아직도 여러 가지의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판단일 것이다. J. Wellhansen, O. Eikfeldt, W. Eichrodt, O. Procksch, G.E. Wright, E. Jacob, Th. C. Vriezen, G. von Rad, G. Johrer, W. Zimmerli, Clwestermann, L. Kohler 등이 나름대로 구약신학을 펴냈으나 어느 것도 만족할 만한 것은 못된다. 이 가운데 G. von Rad의 구약 신학은 결함이 있긴 하나 종교사적 고찰에 매이지도 않고 조직적 구조를 따르지도 않고 오직 양식 비판과 전승사적 비판에 의거하여 파악된 원전이 전해주는 역사신학적 선포 내용을 따라 구약신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4. 구약신학의 재료 : 구약신학의 역사와 그에 준하는 방법을 고찰하여도 어떤 결정적 기본 사상을 유기적으로 조직화시킬 수 없다면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함부로 결정하지도 않으면서 구약에 다양하게 나타난 신학 내용을 재료로써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세오경의 핵심은 창조부터 가나안 땅의 점령까지의 구원의 역사이다. 인간의 죄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가 승리하는 역사는 창조, 성조의 역사, 출애급, 광야에서의 방황, 계약, 가나안에 들어감 등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특히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라고 규정되는 계약관계에서 하느님이 법(Tora)은 선물로 주시는 것이 주목해야할 사항이다. 이 법의 준수가 하느님께 이르는 구원의 길을 다시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거역할 수 없는 말씀을 전함으로써(예레 23:29) 하느님의 결정하신 것을 실천하는 도구이고(이사 55:11) 그의 입 노릇을 한다(예레 15:19). 이스라엘이 자기 고집을 피우면서 서슴지 않고 하느님의 법을 선포한다. 그렇다고 구원이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느님을 섬기려는 항구한 의지가 있어야 약속받은 자비와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야훼는 모든 이의 주인이시므로 다른 민족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는 구원이 된다. 그러나 이민족이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뜻은 아니다. 야훼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은 이민족의 단죄 같은 것을 추상적 진리로 선포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하느님과의 관계 역사를 다시 기억케 하고 회개하게 하는 데 있다. 이런 과거 약속에 충실하게 자극을 주는 것은 동시에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 약속에 충실한 분이고 이 약속은 미래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각 예언자들은 고유한 신학적 관심을 갖고 있다. 호세아는 야훼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아모스는 하느님이 민족들에게 하시는 행동을, 이사야는 시온에서의 야훼의 지배를, 예레미야는 계약을 어긴 백성을 돌보시는 야훼를, 에제키엘은 귀양의 벌 때문에 고통받는 자를 돌보심을, 제2 이사야 예언서 저자는 창조주가 곧 구속자라는 것을, 하바꾹은 하느님의 정의를, 말라기와 제3 이사야서 집필자는, 바른 경신례를, 하깨와 즈가리아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주안점으로 삼고 자기 생각들을 전개한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는 신명기의 영향을 받아 쓰여졌다. 귀양이 그 배경의 중심이 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으로 특별히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명으로써 말미암아 하느님의 벌을 자초하였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요아킴에게(2열왕 25:27 이하) 보여 주시는 자비를 통해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다시 새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다.

역대기에서는 귀양후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공동체에 대해 언급한다. 예루살렘에 되돌아온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거룩한 마음으로 섬겨야 하고 그리고 성전에서의 예절을 정성껏 수행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실천하는 것이고 역사의 목적이기도 한다.

지혜서의 오래된 부분(격언 10:1-22:16 · 25-29)에서는 경헌에서 나온 생활의 지혜를 취급한다. 여기에는 행동이 결과를 초래한다는 창조질서가 전제되고 있다. 욥기는 인과관계의 구조를 비판한다. 의로운 자가 고통을 받을 수도 있고 약한 자가 잘 살 수도 있으나 사람은 야훼께 의탁함으로써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행동하시는 그분의 자비를 맛볼 수 있음을 설파한다. 전도서 저자는 절제 있는 생활을 할 것과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선물을 감사히 받을 것을 충고한다. 지혜가 신앙과 이스라엘의 법과 동일하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야훼는 그것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 지혜는 사람들에게는 스승이었고(잠언 1-9) 계시의 중계자이며(집회 24) 역사의 주재자(집회 44-50, 지혜 10) 이다.

요나서는 하느님이 이만족도 구원하시려는 것을 보여주고, 룻기는 다윗의 선조가 충실성 때문에 하느님의 섭리를 경험했음을, 에스델은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찬미를, 유딧은 약한 여인의 손을 통해 하느님이 당신의 구원의 힘을 드러내셨음을, 토비트는 타향에서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생활의 모범적 예를 일러준다. 구약이 끝나갈 시기에는 묵시록이 발전하였다(다니 7-12). 하느님의 적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하느님이 멸하시고 새 세상이 생기게 될 것을 말한다.

이런 다양한 구약 선포의 내용을 일관성 있게 요약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으로서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한다. 그러나 미래는 하느님께 속한 분야고 구약은 아직 완성을 고려한다는 의미에서 신약의 시작을 예고한다.

5. 신약신학의 역사 : 처음에는 교의신학을 증명하기 위한 성서신학이 발전하였다. S. Schmidt(1671)가 ≪Collegium Biblicum≫을 저술하여 그런 시도를 하였다. 교의신학과 독립하여 독자적인 신약성서 신학을 개척하기 시작한 사람들로서 C. Haymann(1708, 1768), A.F. Buschining(1758) 등을 들 수 있다. J. Ph. Gabler(1787)는 성서 안에 시대적 조건에 매여 표현됐을 뿐이지 사실은 대단히 합리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던 당시 Rationalismus의 영향을 받아 성서사상의 역사적 발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성서신학의 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때부터 신약 성서신학을 독립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역사적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G.L. Bauer의 ≪신약성서신학≫(1800∼1802), G. Ph. Kaiser의 ≪성서신학≫(1813∼1821), W.M.L. de Wette의 ≪신구약의 성서 교의신학≫ 등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기본적인 것을 다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약의 종교사 안에서의 위치, 구약과의 구별 및 관계, 유태교와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재료에 대한 어원적 및 역사적 고찰 등이다. 그러나 독자적 학문 원칙을 아직 수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의신학을 대치하지는 못하였다. 이런 독자적 원칙의 발견은 성서신학이 교의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그리스도교적 역사철학으로 변형되면서부터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헤겔의 영향을 받은 F.C. Bauser와 소위 튀빙겐 학파를 통해 진행되었다. 그 후 역사적 실증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신약성서신학은 소위 종교사가 되었다. 이런 발전은 역사적 실증주의 또는 역사적 프래그머티즘의 주장, 즉 역사 안에서 진리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것만 승인하므로 진리의 파악이란 사실과 그 원인을 구명하는 것이고 발전자체나 발전법칙을 증명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옳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런 사상에 의거하면 마음대로 결정하므로 어떤 한계를 정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전(canon)을 정하는 것도 비판받게 된다. H.J. Holtzmann(1911)과 H. Weinel(1928)의 신약성서 신학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특징있는 책이다. 1차 대전 후 프로테스탄트 편에서 신약 성서신학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A. Schlatter는 신약의 여러 사건을 선입견없이 감지할 때 그 속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학적 반성의 결과로 역사 안에 나타난 계시의 대해서도 이때부터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성경의 하느님 말씀의 독특성도 새로이 알아듣게 되었다. 또 신약 성서신학은 차츰 신학적 사료에 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 후에 신약 성서신학에 대해 많은 연구와 저서가 나왔으나 성서신학의 과업이나 핵심에 대한 토론은 아직 그치지 않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에서 신약 성서신학의 핵심을 찾고 있을 때 가톨릭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서신학이 부분적일 수는 있으나 처음에 교의신학을 거슬러 독립하려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일찍이 알아 본 J.S. Drey(1819)를 필두로 차츰 그 신학의 중요성을 알게 된 J. Corluy(1884), H. Th. Simar(1883), L. Atzberger(1890) 등을 통해 가톨릭에서도 신약 성서신학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지금의 추세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볼 수 있다. ① 프로테스탄트에서 나오는 신약 성서신학과 같은 점이 많고 또 그와 활발히 토론하고 있고, ② 역사 비판적인 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M. Meinertz(1950), A. Lemonnyer(1928), J. Bonsirven(1951), K.H. Schelkle(1967∼1976) 등의 신약 성서신학은 주목할 만하다.

6. 방법과 구성 : 우선 교의신학적 방법이나 구성은 신약성서의 고유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못된다. 일반적으로 언어적, 역사적, 종교사적 고찰은 신약 성서신학 연구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본문 비판시에 사용되는 여러 방법도 이 연구에 전제된다. 초대 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영지주의(Gnosticismus)의 종교사적 영향을 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구약과 초기 유다이즘의 전승을 꼭 참고해야 한다.

신약성서 서술에는 공관복음, 바울로 서간, 요한 복음과 서간을 분리하는(Holtzmann, Meinertz, Bultmann, Bonsirven) 경우가 있고 일관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구분하지 않고 다루는 경우가 있다(Strantfer, Burrows). 전자의 경우에 고유한 관념 및 사상을 제대로 부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7. 신약 성서신학의 문제 : 바울로의 신학, 공관복음의 신학, 요한계 문헌에 의거한 신학이 각각 독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마르코는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의 생애를 앞에 놓았다. 그러나 바오로와 요한계 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구원의 공동체가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된 신학적 관심사이다. 그리스도 부활 후의 공동체의 이런 상태는 새로운 것이다. 성령에 대한 생각은 구원과 연결하면 공통성을 띠지만 각론(各論)에 들어가면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신약성서 안에서 볼 수 있는 신학의 다양성은 다가오는 종말, 그리스도 자신과 그에 따른 공동체 역할에 대한 여러 견해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약 성서신학이 다양한 견해를 정리 정돈하여 내부적 연결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첫째 신약의 신학적 내용을 도대체 일관성있게 제시할 수 있느냐, 얼마나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단순히 서술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둘째 신약 성서신학의 구체적인 구성에 대해 질문이 생길 수 있고, 셋째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신약성서의 개별적 내용과 신약 성서신학과의 관계에 대해, 넷째 신약과 구약을 내면적으로 일관하는 신학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 끝으로 성서 신학과 교의신학의 연관성을 어떻게 천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8. 성서의 일관되는 주제파악의 가능성 : 성서신학에서 구약과 신약의 고유한 또는 공통되는 중심사상을 찾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양식 비판을 통해 이런 시도가 계속되어 왔지만 집성 비판이 도입되면서 차츰 같은 내용을 다르게 편집 저술한 각 복음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대두되었고 신약에 일관되는 중심사상을 찾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O. Cullmann이 시간과 구원사는 신약의 일관성을 식별할 수 있는 뼈대가 된다고 했지만, H. Conzelmann은 그것을 루가복음에서는 그럴 뿐이고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E. K semann은 신약성서는 처음부터 편린을 집성한 것이므로 신약에서 내재하는 통일성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물론 그리스도의 주권, 그리스도의 계시가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G. von Rad는 이런 통일성을 찾을 수 없다고 했으나 Smend는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라는 것을 구약의 중신이라고 하고, G. Fohrer는 하느님의 주권과 하느님과 인간과의 공동체가, W. Zimmerli는 하느님의 이름이 구약신학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도 만족한 대답은 못된다.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계약을 중심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근동 아시아 역사 및 종교 연구로 이스라엘의 고유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적어도 수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선택의식을 중심으로 삼아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언 가운데 구약의 중심이 있다고 모고 그 예언이 채워지는 것이 신약이라고 보나 유태인들은 법에 하느님의 계시의 중심이 있고 이스라엘의 선택의 표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선택의식도 구약과 신약을 정리하는데 도움은 되나 유일한 것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구약은 신약의 전형이라고 하는 의미론도 비판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심사상을 찾아서 구약과 신약을 체계화 하는데 집착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역사 비판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구약과 신약에 일관되는 하느님의 구원의 의지와 그것이 나타나는 역사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하느님의 역사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9. 성서신학의 가능성 : 성서신학은 원문과 해석과 각 시대에 전하려는 의미 가운데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원천이 되는 원문의 의도 구명이나 각 시대를 상대로 하는 선포에 있어 필연적으로 상대성 및 관계성이 전제되게 마련이다. 성서신학은 이런 관점에서 어떤 객관적 체계적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계시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과 그 공동체의 다양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연구 대상은 객관화되기를 거부하고 연구하는 자와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에 성서신학의 다이내믹한 면이 있고 성서신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있다.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시대와의 대화 속에서 실현되는 것을 찾고 또 이룩하기 때문에 성서신학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動的)인 신학이다. 이런 견지에서 추구되는 성서신학은 일정한 체계-즉 역사주의, 실존론적 해석, 조직신학적 접근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한계성을 벗어날 수 있다. (沈勇燮)

[참고문헌] K. Stendahl, Biblical Theology, in : G.A. Buttrick, (ed.),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I, Nashville / K. Rahner, Biblische Theologie, in Lixikon fur Theologie und Kirche, I / K. Berge, Bible, in Sacramentum Mundi I, pp.160-171 / J. Hempel, H. Rieserfeld, Biblische Theologie, in RGG 1, 125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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