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가지본당 [한] 薪枝里本堂 [관련] 숙천본당

1898년 평남 평원군 검사면 신지리(平南 平原郡 檢山面 薪枝里)에 창설되어1902년 폐쇄된 본당. 섶가지 일대는 1864년 평남 은산(殷山)의 적뢰동에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성세성사를 받고 귀향한 강용홍(康龍洪, 베드로), 김덕삼(金德三, 요셉), 김의경(金義慶, 안토니오)등에 의해 처음으로 전교 되었고, 병인(丙寅)박해로 교우들이 산산이 흩어졌다가 신교(信敎)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다시 교우들이 모이게 되었다. 1895년 평양 본당 창설에 이어 1898년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초대 주임에 파리 외방선교회의 샤플랭(Chapelain) 신부가 부임하여, 평양이북지역을 순회 전교하며 의주(義州), 순천(順川), 영유(永柔), 안주(安州) 등지에 공소를 개설하였다. 1901년 2대 주임신부로 망(Meng, 明) 신부가 부임했으나 이듬해 망신부가 전교상 유리한 지역인 영유로 본당을 옮기면서 본당은 영유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그러나 발전을 계속하여 1908년 공소에 성숙학교(聖肅學敎)를 개설하는 한편 1913년 강당을 신축하고 로마에서 종(鐘)을 구입해서 신축 강당의 종탑에 달았다. 그 후 1931년 숙천본당(肅川本堂)이 창설되자 영유본당으로부터 숙천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다. (⇒) 숙천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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