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본당 [한] 世宗路本堂

서울 대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성심. 명동본당을 모본당으로 하여 1945년 8.15광복 직후 교구장의 승인을 얻어 사직동의 한 교우댁 2층에서 사직동본당으로 출발하였다. 사제수의 부족으로 주임신부의 임명도 없이 교구청에서 신부들이 윤번제로 와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1946년 4월 이선용(李善用, 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1947년에는 첫 영세자 46명을 배출하였다. 1949년에는 도렴동(都 洞) 한옥으로 옮기면서 본당명칭도 도렴동 본당으로 바뀌었다. 1950년 6.25동란으로 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9.28수복으로 2대 주임 이완성(李完成, 요한)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 명칭을 세종로본당으로 개칭하고, 1954년 지금의 성당 자리인 필운동(弼雲洞)에 대지 416평을 사들여 미군이 쓰던 퀜세트를 얻어다가 성당으로 활용하였다. 같은 해에 3대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가 부임, 1955년 8월 구성당을 신축 준공하였다. 박 신부는 교우들이 모은 성금으로 1958년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영복산(榮福山) 6만 4,000평 을 매입, 본당묘지를 마련하고, 신심단체의 창설과 활동을 본궤도에 올려놓았으며, 많은 지성인을 집단 영세시키는 등 세종로본당을 굳건한 반석위에 자리 잡아놓은 뒤 1967년 미아리본당 신부로 전임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계광(李啓光, 요한) 신부는 박 신부 때 지은 단층벽돌 성당이 신자의 증가로 비좁아지자 1968년 2층으로 증축, 위층은 성당으로 아래층은 유치원, 주일학교, 각 단체 회의실 등으로 이용케 하였다. 6대 본당주임 김인성(金仁成, 요한 비안네) 신부는 1979년 증축한 지 10년이 지나 초라해지고 각 단체 활동에 불편을 주게 된 성당을 전면 개수하였다. 1981년에 부임한 현 7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토) 신부는 현대식 사제관(수녀원과 각종 회의실을 겸함)을 신축하였다. 이 본당 관할구역은 내수동, 적선동, 당주동, 내자동, 도렴동, 광화문, 신문로 1, 2가, 필운동, 채부동, 옥인동, 효자동, 궁정동, 청운동, 신교동 등 일원이며, 신자수는 4,202명(1983년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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