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 [한] 受難 [라] passio [영] passion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상 죽음과 이에 이르기까지 겪으셨던 고통, 이는 예수의 생애와 활동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부분이며 그의 고통과 죽음으로 인하여 인류를 위한 사죄(赦罪)와 보속(補贖)이 성취되었다.

성서에서 예수를 소개할 때 몇 십년 전에 살았던 한 인간 예수의 역사를 전하는 것이 안고 현재 현양된 자로서의 주님인 예수를 선포하듯이, 그의 수난도 시초부터 부활의 빛을 통하여 조명되었다. 복음서는 수난예고에서부터 예수의 죽음이 부활 안에서 현양될 것임을 지적하며(마르 8:31, 9:31, 10:33-34) 신앙 고백문들에서도 죽음과 부활은 연결되어 있다(1고린 15:3-4). 십자가 위에 높이 올려진다는 것은 벌써 영광으로 높이 올려짐을 뜻한다(1고린 3:14, 8:28, 12:22 · 34). 그렇다고 해서 부활이 수난을 무효화시켜 더 이상 수난에 대하여 말할 것이 없게 되는 것이 아니고 부활로 현양된 자는 십자가에 처형된 채 항상 남아서 죽음을 통하여 생명에로 이끄는 구원의 길이 된다(1고린 1:18, 2:9, 2고린 12:7-10).

예수가 메시아라는 비밀은 수난중에 드러났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요(마르 14:61-62) 왕임(마르 15:2)을 시인하였고 한 이방인은 이를 증언하였다(마르 15:39). 이처럼 예수의 수난은 메시아적 본성과 함께 이해되어야 참 메시아를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의 아들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므로(마르 8:31) 수난은 예수가 메시아요 하느님의 섭리임과 동시에(묵시 13:8), 예수 그리스도가 자원한 것이다(마르 8:31-32, 9:31, 마르 9:12, 루가 13:33). 예수는 신을 모독하고(마르 2:7) 안식일을 어긴다는 비난을 들음으로써(마르 2:24) 죽음의 위험을 초래하였고(마르 3:6) 당신이 이스라엘의 예언자와 순교자들의 대열에서 있음을 자각하였으며(마태 23:25) 유다의 배반(마르 14:18), 제자들의 도망(마르 14:27)을 예언하면서 고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무죄는 재판석상에서조차 인정되어야 했다. 빌라도(루가 23:4-14)와 그의 부인(마태 27:19) 및 헤로데(루가 23:45)는 예수의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무죄한 예수는(베드 2:22-25) 세상의 죄 때문에 수난을 당하셨다.

수난은 설교와 예식의 내용이자 신자생활의 이상이며 표본이 되었다. 모든 메시지는 십자가의 복음을 발전시킨 것이며(1고린 2:2, 갈라 3:1 참조) 초대교회에서 예식 중에 불리던 노래들도 수난을 찬미하고 있다(필립 2:6-11 참조). 대사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은 단 한 번 이루어진 희생이면서(로마 6:9-10)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었으며(히브 9:25-28) 이후로 교회의 예식에서 십자가를 기억하고 현존하게 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신자는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루가 23:26) 십자가를 져야 한다(마르 8:34). 예수께서 수난을 통하여 보이신 표양을 따라 그리스도 교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2고린 5:15) 모든 이를 위해서(로마 14:7-10) 살고 죽어야 한다. 한 인간의 목적이란 결국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와 함께 고난을 나누고 함께 죽는 것이다(필립 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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