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1 [라] Stephanus

① 최초의 순교자(protomartyr, ?~35?). 성인. 축일은 12월 26일. 중세의 특히 유럽대륙에서 가장 널리 존경받던 성인의 한 사람이다. 전승에 의하면, 최초의 부제(副祭)라고 한다. 사도행전 6:1-8:2에 그의 임명과 연설, 그리고 순교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는 디아스포라에 살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태인으로 추측되며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식량 배급을 할 7인중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사도 6:5). 또한 설교하고 기적을 행하는 일을 하였으므로(사도 6,8-9), 유태인들의 미움을 사서 산헤드린에게 고발되었다.

사도행전 7:2-53에는 박해자들 앞에서 행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연설이 실려 있는데, 이에 화가 난 유태인들은 모세법에 따라 그를 돌로 쳐 죽였다. 이 때 뒤에 성 바울로가 된 사울이 있었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에게 박해자들을 용서할 것을 청하며 순교하였는데, 이런 태도는 후세에 여러 순교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무덤은 415년 사제 루시안(Lucian)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알려지지 않았었다. 축일은 4세기말부터 12월 26일로 지켜졌으며, 2년에 한 번씩 그의 유해를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성 스테파노 유해발견 축일’(Inventit St. Stephani)이 8월 3일에 지켜졌다. 그러나 발견 기념일이 1955년 이후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455~460년에 에우도키아(Eudoxia) 여황제는 다마스커스 성문밖에 그를 기념하는 교회를 세웠는데 그 유적지가 1882년에 도미니코회에 의해 발견되어 새로운 그의 교회가 세워졌다.

② 헝가리의~(S. Hungariae, 975~1038). 성인. 축일은 8월 16일. 헝가리왕(재위 : 1000~1038). 부다페스트 근교의 에슈테르곰(Esztergom)에서 태어났다. 헝가리명은 바이크(Vajk). 스테파노(헝가리어로는 Istvan)는 세례명이다. 부친 게사(Gaza)는 헝가리의 통치자였다. 995년 프라하의 성 아달베르토(Adalbertus)에 의해 견진성사를 받았고 이어 같은 해 바바리아공(公) 하인리히 2세의 누이동생 기젤라(Gisela)와 결혼했으며, 이 때문에 헝가리 내에서의 그리스도교 및 독일 세력이 증대하게 되었다. 997년에 그의 요청으로 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보내준 왕관을 스스로 쓰고 헝가리 최초의 왕이 되었다. 그는 프랑크왕국을 모범삼아 공정하고 엄격한 정치를 했으며, 포교활동에 있어 사도적 지배자의 귀감이 되었었다. 마르틴스베르크(Martinsberg) 등 수도원 설립을 완성, 2개 대주교와 8개 주교구를 설치,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법제(法制)를 선포, 이교의 반동을 억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유해는 슈툴바이센부르크(Stuhlweissenburg)의 성당에 있는 아들 에메리히(Emerich, 1007-1031)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으며, 1083년 교황 우르바노 2세에 의해 부자(父子)가 동시에 시성(諡聖)되었다. 부패되지 않은 그의 오른손은 헝가리의 국민적 성물(聖物)로 존숭되며, 부다페스트성내의 경당에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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