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나 직장, 지역 등 상호유대를 가신 개인 또는 단체 간의 협동조직을 기반으로 자금의 조성과 이용을 통해 서로의 복리를 도모하는 비영리 금융기관인 신용협동조합은 1850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도시와 농촌에 조합이 창설된 후,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으로 보급되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 5월 1일 부산의 중앙본당 신자들과 메리놀병원 직원들로 구성된 성가(聖家) 신용협동조합이 그 효시가 되었다. 이 조합은 메리 가브리엘라(Mary Gabriella Mulherin) 수녀의 정성어린 노력에 의해 탄생된 것으로 가브리엘라 수녀는 ‘한국 신용협동조합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 2개월 후인 6월 26일에는 서울에서 또 천주교회 신자들을 회원으로 하는 가톨릭중앙조합이 창립되어 신용협동조합 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 풍조와 4.19, 5.16 격동 속의 불안한 정세는 잠시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1964년 4월 55개의 조합이 모여 한국 신용협동조합연합회를 결성, 5월에는 국제기구에도 가입하였다. 그리고 1979년엔 조합원 70만명에 자금 1,000억 원을 돌파하는 발전을 보였다. 1972년 갈망하던 신용협동조합법(법률 2338호)이 시행된 다음, 출자 · 대출한도 · 이자율 · 예탁금 · 상환준비금 등의 규정에 따라 법적 보장을 받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신용협동조합은 튼튼한 토착화(土着化)에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한편 1972년 이후 새마을운동을 신용협동조합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순수한 민간의 자발적 연대성에 의해 발전되어야 할 신용협동조합 운동에 이질적 작용이 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다.
[참고문헌] 信協運動 20年史, 信用協同組合聯合會, 19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