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한] 神話 [영] myth [독] Mythos

신화는 아득한 옛적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것이 서술하는 사건이 시간의 비롯함 이전 또는 그 이후와 함께 있으며, 그 주역이 초월적인 존재나 신이고, 그 서술내용을 실증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신화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것이 실재로 간주될 수 없다는 두 가지 입장에서의 반론에 부닥쳐 왔다. 역사학적 입장에 의하여 역사 이전 혹은 이후로 처리되면서 사학적 관심의 영역에서 배제되었으며, 합리적 분석에 의해서는 그것이 다만 경험의 투사나 미개한 상상의 소산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나 반론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그것이 이야기하는 원초성과 종국성, 그리고 초월성과 신성성(神聖性) 때문에 인간의 실존적 정화의 의미나 실존 양태의 당위성에 대한 권위적 선언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신화는 ‘옛날 이야기’의 범주에만 들어 있을 수는 없다. 즉 민담, 설화, 동화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일상성을 넘어서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 사실에 대한 서술이고, 그것은 일상성 속에 있는 실존에 대하여 규범적인 기능을 가지는 이야기라고 정의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신성설화(神聖說話, sacred story)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그 내용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신화이다. 이 유형의 신화는 전재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서술할 뿐만 아니라 사물의 질서와 기초를 마련한 힘이나 신성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창조신화는 다시 우주창조신화 · 인류창조신화 · 문화기원신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주창조신화는 그 내용에 따라 창조형과 점진적 진화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것은 창조주를 전제한다든가 창조주 다른 낮은 신들을 함께 전제하면서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창조 이전부터 있어 온 자료의 활용이나 무로부터의 우주의 발생과 완성을 이야기한다.

인류창조신화는 우주창조신화의 일부분일 수도 있고,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도 있으나, 단순히 인간의 기원만을 서술하지 않고, 특정한 민족이나 부족, 혹은 혈연의 정당성과 연결되어 있어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들에 의하면 인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경우, 땅에서 솟아난 경우, 흙 등의 자료를 사용하여 빚어진 경우, 바위 · 나무 · 알 · 물에서 생긴 경우 등으로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한결같이 초월적인 존재나 신성한 의도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창조신화와 인류창조신화는 일정한 문화권 안에서 서로 구조적으로 상응하면서 신 · 인간 ·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형성해 주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종교적 태도의 이념적 내용을 마련해 준다. 즉 ‘구원’의 논리를 구조화하는 것이다. 종말이나 파멸, 재생과 부활의 신화 등이 우주 및 인류창조신화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별히 죽음의 기원을 서술하는 신화와 우주의 종말에 관한 신화는 어떠한 문화에서나 구원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문화기원신화는 특정한 행태 · 관습 · 제도 · 문물의 비롯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영웅이 그 주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영웅은 초월적이고 신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창조주는 아니다. 우주창조신화나 인류창조신화의 주역이 창조주라고 불려질 수 있는 데 반하여 문화기원신화의 주역은 창조된 우주를 인간의 삶에 적절한 것이 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불의 기원 신화, 식물(植物) 재배기원 신화 등이 이에 속한다. 이밖에도 문화기원신화는 제도의 기원, 의례의 기원을 서술하면서 현존하는 제도나 실천되고 있는 제의의 타당성을 근원적으로 승인한다.

창조신화를 ‘비롯함’과 연결된 것으로 한정할 때,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종말에 관한 신화를 창조신화와는 상대적인 다른 범주의 신화로 묶을 수 있다. 이 유형의 신화로는 죽음기원 신화, 세계의 종말, 시간의 단절, 종국적인 우주의 파멸이나 소멸, 메시아 출현, 지복(至福)한 왕국의 도래, 천재개벽 등의 신화를 들 수 있다. 창조신화와 종말신화 외에도 신들에 관한 신화를 또 하나의 신화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신화는 신이 무엇을 행했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며, 여러 신들의 기원과 계보를 서술하고 있다.

신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에 따른 위와 같은 분류에 의하면, 신화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신화의 설명적 기능이다. 신화는 자연 · 사회 · 문화 및 생리적인 사실 등의 소이연(所以然)을 밝혀 준다. 그러나 신화의 설명은 사물에 대한 원인론적 해명은 아니다. 신화는 원인설명적인 것(explanatory causes)이 아니라 원초적 실재의 조건(primeval condition)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때문에’가 아니라 ‘∼로부터’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적인 함축을 고려한다면 신화는 ‘옛날에’로 시작되지 않고 ‘아득한 처음에’로 시작된다. 둘째는 현실적인 실존적 삶을 정당화하거나 그것에다 타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신화는 현실적인 삶을 언급한다. 대부분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신화적인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이 그러하고, 자연의 변화와 사회적 현실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문화적 전승은 신화적 기초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와 연결되지 않은 현실은 존재의미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 같은 기능은 분석적 이성(理性)이 미치지 못하는 존재론적 의미의 세계에 대한 서술적(descriptive) 기능을 신화가 담당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서술적 기능은 전통사회에서 신화가 지니고 있던 교육적 기능을 유념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시 · 전통사회에서는 신화가 사유양태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형태의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화는 실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참이다. 설명적 기능과 서술적 기능은 그것이 실존적 정황에 대하여 참을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규범성을 가진다. 따라서 신화의 기능은 실재와의 소통, 실재의 경험적 실현을 구술(口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에 대한 연구는 합리주의적 접근, 낭만주의적 이해, 민속학적 관심, 기능론적 해석, 구조적 인식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연구는 각기 비유적 해석, 자연주의적 서술, 신화전파의 이론, 사회관계의 반영, 여러 신화의 논리적 정합성(整合性)에 대한 추구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화가 허구적인 것이고, 사실이 아니며, 역사적 실재일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은 점점 그 근거를 잃어가고 있다. 심리학에서 발전된 초역사적 방법에 의하면 신화는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위기들을 통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줌으로써 존재양태의 전이(轉移)를 의미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물론 신화의 내용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신화의 구조는 변하기 않고 항구적이어서 원형(archetype)이라든가 상(像, image)이라든가 양태(pattern)로 정착되는 모델이 되어 인간의 의식(意識)을 결정하는 것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관심에서는 신화가 당대 사회의 우주에 대한 상을 투영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적 도식(圖式, scheme) 안에서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자리에 서면 신화는 사실도 아니고(untrue), 실재하지도 않는(unreal)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실재의 모든 차원을 향하도록 하는 포괄적인 상징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신화는 사물의 신비의 세계, 즉 사물자체의 실존의 선결조건과 인간의 의식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당대의 지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우주상을 마련하며, 사회적 실존으로서의 자기확인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자아가 자신을 실현하려는 물음과 해답을 함축하고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현존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긴요하다.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의 중심에서 삶에다 목적과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고대의 신화들, 그리고 그렇게 아득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신화의 껍질을 새롭게 벗겨 낼 수 있는 심성의 시적(詩的)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종교화의 직접적인 관련에서 볼 때 신화의 제의 수행에서 음송되든가 경전에 문자적으로 정착하든가 하면서 전승된다. 신화와 제의와의 관계는 상보적(相補的)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의 구체적 실연(實演)이 제의인지, 제의의 실연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이 신화인지를 우선순위를 기준하여 서술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경전에 수렴되어 있든, 음송되는 것이든 간에 신화는 종교 속에서 하나의 신성사(神聖史)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신성사는 곧 구속사(救贖史)의 내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신화는 시간의 비롯함에서 일어난 원초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그러한 이야기는 곧 신비를 계시하는 일이며, 그렇게 계시된 초월적 주체의 형태는 삶의 모델이 되고, 바로 그 모델에 따라 사는 것은 원초적인 존재에의 참여이기 때문이다. 실재에의 참여, 즉 거룩한 것의 모방이나 재연, 그리고 그것의 지속 또는 끊임없는 반복이 곧 신성사의 전개이고 구속사의 실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화가 주장하는 것에 의거하여 사는 삶은 인간이 자기의 종교성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신화적인 방법을 통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파악하려는 태도와 종교는 거의 동일시되고 있다. 이같이 신화의 종교적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가 단순한 해석 이상의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는 그것 자체가 ‘구속의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를 구체화하는 것, 그것은 일상적인 실존 안에 영원한 실재를 들여오는 역동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물론 신화가 그것이 계시하는 영원한 실재와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신화의 서술과 그 실재와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한 내적 연관은 신화의 실재성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가 제의와 아울러 삶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주장은 신화가 삶의 진실을 계시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근거한 선언이다. 신화는 일상적인 언어 · 형태, 물질적 사물 등을 이용하여 거룩한 것, 혹은 궁극적 실재를 드러낼 수 있는 역설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신성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신화적 서술의 내용은 일상적인 실존의 위협, 좌절, 한계, 모호성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다. 이러한 관계상황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 혼돈으로부터 질서로 변화되는 것은 거룩한 것의 실재를 모방함으로써 비롯된다고 하는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종교적 물음은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이 거룩한 실재가 그 자신을 나타내느냐를 묻는 것이다. 그 실재의 현현을 발견하고 경험함으로써 실존은 실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이 실재를 실존 안에 실현하면서 종교적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신화들은 문화사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신화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문헌에 정착되어 있는 신화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신화적 특성들이 대체로 탈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계와 인간은 신에 앞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 세계와 인간이 있은 뒤에 신이 하늘에서 하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우주나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없고 이러한 개벽신화가 없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종말신화도 찾아볼 수 없다. 아울러 인간기원 신화의 분명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듯이 생사신화도 뚜렷하지를 않다.

그러나 문헌신화에 발견되지 않는 이러한 신화적 요소들이 관습과 의례, 그리고 자연에 대한 태도 등에서 하나의 신화적 사고로 잔존하고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과 달, 물과 나무 등에서 유추되는 신비한 생명력에의 추구라든가 재생제의의 실연, 그리고 죽음과 삶의 화해 등이 그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는 유형이고, 곰 · 용녀(龍女) · 부리가 떨어져 나가는 새 등의 전신(轉身) 모티브들도 그 하나의 예일 수 있다. 또한 암시와 수수께끼 풀이, 신물(信物)과 신원을 밝히는 일, 미궁(迷宮)을 통고하면서 당하는 재난 등은 통과제의적 신화로 여겨지면서 신성사의 면모를 약여하게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 신화에 대한 성급한 단정은 많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창조신화의 범주에 들 신화의 부재를 이르는 주장이 자칫 한국적 심성의 비종교적 특성의 주장에 미치면서 외래종교의 필연적 우위성을 논증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鄭鎭弘)

[참고문헌] G.S. Kirk, Myth: It Meaning and Function in Ancient and Other Cultures, Cambridge Univ. Press, 1970 / M. Eliade, Myth and Reality, Harper and Row, 1967 / G.A. Larue, Ancient Myth and Modern Man, Prentice Hall, 1975 / T.A. Sebeok, Myth, Indiana Univ, Press,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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