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의 결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주교들에 의하여 제창된 아리우스주의에서 생겨난 종교단체. 니체아 공의회 후, 아리우스파는 독자적인 교회가 되었다. 정통 신앙과 다른 교의의 정식문(定式文)이 널리 씌어졌는데 그것은 전반적으로 혼동되기 쉬운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정통신앙의 해석도 인정하였다. 정통신앙은 국가권력에 의해 인정되고 있었으므로, 이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법의 규정에 따라 중벌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리우스파는 그 뒤 그들 자체가 몇 갈레로 분열되어 갔다. 엄격한 아리우스파인 이른바 아노모이오스파(anomoios)는 성자는 성부와 닮지 않았다고 주장하였고 타협적 아리우스파인 호모이오스파(homoios)는 성자는 성부와 닮기는 하였으나 본질적으로는 성부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 두 파는 다른 지역보다도 고트족 가운데서 오래 존속하였다. 아리우스파의 고트인 우르필라스(311~383)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교육을 받고, 아리우스의 친구인 에우세비오에 의해 주교로 성성된 후, 서(西)고트족(Visigoths) 가운데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여 4세기 후반에는 그들의 대다수를 아리우스파로 만들었다. 아드리아노플(Adrianople, 현재의 에디르네)의 전투 뒤 서고트족의 대부분이 로마제국 영토 안에 정주하게 되자, 그 곳에서 아리우스파는 서고트족, 동고트족(Ostrogoths)은 물론, 부르고뉴(Burgundiaus) 지방의 주민인 수에비족(Suevi)과 반달족(Vandals), 그리고 롬바르드족(Lombards)의 공인 종교로까지 되어 약 200년 동안 존속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