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니즘 [영] Americanism

19세기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교회 내부의 개혁운동. 가톨릭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자 하는 국외자들을 주저하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교리 · 포교 · 개종 방법 속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현대세계의 문화 풍토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었다. 파울리스트회의 창립자인 헤커(I. Th. Hecker)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메리카니즘은 당시 가톨릭 교리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교회는 오히려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지적하고, 교리는 신악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리만이 가르쳐져야 하며, 종파에 구애됨이 없이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는 교파무차별주의적(敎派無差別主義的) 입장을 취하였다. 그래서 1893년 9월에는 아메리카니즘에 입각한 교파들이 시카고에 모여 종교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 교회의 권위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개인의 영혼은 성령에 의해 직접 인도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아메리카니즘은 사고 · 언론 · 저술 등의 다방면에 걸쳐 개인의 자유가 크게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도덕원리가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강조되던 수동적 복종 · 겸손 · 금욕 대신에 능동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었고, 초자연적 관상생활이나 수덕생활이 지닌 수동적 생활보다 능동적인 자연적 덕의 함양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아메리카니즘으로 하여금 모든 보수주의에서 벗어나 박애적 사업에 전념케 했고, 민주주의를 촉진케 했고,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요구하게끔 하였다. 아메리카니즘의 이상(理想)은 진보와 지극히 순수한 가톨리시즘이 종합된 아메리카 국가조직을 가지는 것이었다(워싱턴 가톨릭대학장 Keane 주교의 1878년 3월 Catholic World지 기고 논문 중에서).

아메리카니즘은 여러 가지 점에서 근대주의에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프랑스 · 독일 등에 영향을 미쳤고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엘리어트(W. Elliott)가 지은 ≪헤커의 일생≫(The life of Isaac, T. Hecker) 불어판(1873)이 출판되면서 프랑스는 찬반 양론의 급류 속에 휩싸였다. 논쟁은 1899년 교황 레오 13세의 사목서한 에 의해 일단락되었다. 교황은 아메리카니즘이 빠진 오류, ① 영원한 교도권을 필요 없는 것으로 배제한 점, ② 초자연적인 덕보다 자연적 덕을 더 예찬한 점, ③ 수동적 덕보다 능동적 덕을 더욱 선호(選好)한 점, ④ 그리스도교적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하여 수도서원을 거부한 점, ⑤ 변신론적(辯神論的) 방법을 채택한 비가톨릭적 접근방식 등 5개를 신중한 어조로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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