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영] Ireland

영국제도(英國諸島) 중에서 둘째로 큰 섬나라이며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리스도교는 4세기 이전부터 이미 브리튼 섬에서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로마교회에서 파견된 팔라디오(Palladius, 365?~431)나 파트리치오(Patricius, 387?~461?)의 업적은 주로 기존교회를 조직화하는 데 있었고, 전교는 제이의적(第二義的)인 것이었다. 서(西)로마제국의 붕괴 후 아일랜드의 교회는 해외와의 교섭이 없이 특이한 발전을 이룩하였다(500~800년). 즉 많은 수도원이 생겨 교회활동의 중심이 되고, 수도원장들이 주교들까지도 지배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고, 파트리시오나 수녀회장 브리지드(Brigid) 등 많은 성인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세들리오 스코투스(Sedalius Scotus), 에리우게나(J.S. Eriugena)를 비롯한 학자들도 많아 ‘성인과 학자의 섬’으로 불렸다. 해외전도도 활발해서 많은 전도자를 파견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로 간 대(大) 골룸바노(563년), 유럽대륙에 간 소(小) 골룸바노(590년), 그를 따라 스위스로 간 갈로(J. Gallus)가 유명하다. 종교개혁 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잉글랜드의 종교적 경제적 압박을 받았다. 헨리 8세와 엘리자베드 1세가 강경히 영국 국교를 강제했기 때문에 아일랜드 가톨릭 교도의 저항과 반란이 되풀이 되었다. 1649년 크롬웰(O. Cromwell)에 의해 반란 진압을 이유로 철저한 토벌이 있으면서 마침내 잉글랜드의 완전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영국 본국의 식민지정책의 희생이 되어 격심한 빈곤상태에 빠졌다. 그 동안에도 가톨릭에 대한 압박과 그에 대한 대항이 되풀이 되었으나 1829년의 ‘구교도 해방령’에 의해 비로소 차별대우가 폐기되고, 또 성공회도 1871년에 국교(國敎)제도를 폐지하였다.

1922년 이래 정치적으로 남북으로 분열, 북단부(北端部)의 얼스터(Ulster) 지방은 영령 북아일랜드, 나머지 남부의 대부분 지역은 영국지배를 벗어나 아일랜드 공화국(1937~1949년에는 에이레 공화국이라 칭했음)을 형성하고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면적은 8만 4,431㎢, 총 인구 506만 7,000명, 영세 교우수는 약 387만 2,000명, 교구수는 26개, 본당수는 1,319개(1982년 현재)이며, 북아일랜드는 인구 약 140만에 영세 교우는 약 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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